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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반사/感動.野談.說話

조주청의 사랑방야화

by 가마실 2021. 3. 15.

조주청의 사랑방야화

조진사의 생일잔치는 왁자지껄했다.

솟을대문은 활짝 열려 있고, 축하선물 보따리가

바리바리 들어오고, 사랑방에도 대청마루에도

안마당 뒷마당 차양막 아래도 사람들이 넘쳐났다.

모두 오가는 걸음이 바쁜데 대문 밖 담모퉁이에서

젊은 한쌍이 쭈뼛쭈뼛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다.

마침내 결심을 한듯 아이를 업은 아낙이 앞장서고

그 남편은 지게에 김이 무럭무럭 나는 떡시루를

지고 뒤따랐다.

안마당을 지나 부엌으로 가자 갑자기 앙칼진

목소리가 하늘을 찔렀다.

“우리집에 발 들여놓지 말랬잖아.”

“엄마~.”

등에 업힌 어린 아기는 경기를 하듯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엄마? 독기를 품고 씩씩거리는 여인네는

이 집의 안방마님인 조진사의 부인이고,

아기를 업고 온 새댁은 막내딸이다.

조진사 집안은 뼈대 있는 사대부 양반에 천석꾼 부자,

부인 윤씨네 친정은 대감이 즐비하게 쏟아진 명문 집안이다.

맏사위는 홍문관의 제학으로 있고, 조진사의 아들

역시 급제하여 현령으로 떵떵거리는데, 막내딸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도망가서 혼례도

올리지 않고 딸 하나를 낳았다.

신랑이란 게 천하의 돌쌍놈, 저자거리의 털보 박건달이었다.

몇해전 초가을, 외가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던

막내딸이 가을 태풍에 갑자기 불어난 개울물을

건너다 휩쓸려 떠내려가는 걸 저자거리 건달이

마침 개울가를 지나다가 으르렁거리는 흙탕물

속으로 뛰어들어가 조진사의 막내딸을 구했다.

애미 되는 조진사의 부인이 딸 생명의 은인이라고

많은 돈을 챙겨줬지만 박건달은 받지 않았다.

문제는 조진사의 막내딸이 이초시네 맏아들과의

혼약을 파하고 생명의 은인 박건달에게 시집가겠다는 것이었다.

집안에서 완강하게 반대하자 가출해

박건달과 도망을 쳐버렸다.

인근 고을까지 샅샅이 뒤져 막내딸을 찾았을 땐

벌써 배가 솟아올라 있었다.

그렇게 인연을 끊었는데 이듬해 지 애비 생신날에

시루떡 한지게를 해서 친정을 찾아오자 그 지경이

된 것이다.

안방마님은 끝끝내 제 어미 등에서 울고 있는

외손녀를 안아보지도 않는데, 조진사가 막내딸을

데리고 별당으로 가서 등에 업힌 외손녀를 안고

울음을 달랬다.

안방마님은 첫째 사위 내외가 오자 버선발로

내려가 외손자를 안았고, 뒤이어 온 아들에게도

그랬지만, 막내딸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조진사가 부인 몰래 묵직한 전대를 막내딸

치마폭에 넣어줬다.

그리고 뒤뜰로 가 멍석에 앉아 하인들과 술잔을

나누고 있는 막냇사위 옆에 앉아 막걸리 한잔을

받아 단숨에 마시고 그에게도 한잔 그득히

따라줬다.

어둠이 내리기도 전에 막내딸 내외는

홀연히 조진사네 잔치판을 빠져나갔다.

두번 다시 친정집을 찾아오지 않았다.

삼년이 지나 정월보름을 앞둔 어느 장날,

사랑방에서 먹을 갈던 조진사가 시동을

찾았지만 안방마님이 그를 친정에 심부름

보내버려 조진사가 손수 도포를 입고

지필묵을 사러 장터로 향했다.

도대체 몇년 만의 장터 나들이인가.

입춘이 지나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화창한 날,

산 넘고 물 건너 이십리 남짓한 장터에 다다라

여기저기 어슬렁거리는데,

“장인어른”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보니 막냇사위 박건달이 아닌가! 사위의 팔에 이끌려 그의 집에 갔다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막내딸이 뛰어나와 조진사 품에 안겨 눈물을 쏟았다.

“심부자네 집 아니냐? 너희들 이 집에 세들어 사냐?”

조진사의 물음에 박건달이 머리를 긁으며

“제가 이 집을 샀습니다.”

박건달은 해산물 도매상을 해서 거부가 됐다.

막내딸이

“그때 아버님이 주신 전대가 종잣돈이 됐어요.”

친정아버지 저녁상을 차리겠다고 장에 가려는 걸 박건달이 조진사를 모시고 요리집으로 갔다.

요리집에 들어서는 순간 삼십대 초반의 기품 있는

요리집 주인여자와 조진사의 눈빛이 서로

불꽃을 튕겼다.

그날 밤 술 핑계를 대고 조진사는 요리집 안방

금침 위에 쓰러졌다.

한평생 허튼 짓 한번 하지 않던 조진사가

요리집 주인여자와 끓는 사이가 되어 급기야

살림까지 차렸다.

막내딸이 자주 들러 요리집 주인에게 깎듯이

어머니라 부르고 다섯살짜리 딸은 할머니라며

안겼다.

안방마님이 친정조카 둘을 데리고 첩살림을

부수러 왔다가 오히려 조카 두 녀석이 흠씬

두들겨 맞고 엉금엉금 기어서 나갔다.

두놈의 아구창을 돌린 건 박건달 주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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