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실어미가 폐병에걸려 노첨지로부터 장리쌀을 빌려다가 병을 고쳤지만 온 식구들 목줄이 걸려 있는 논 세마지기,
밭 두마지기는 노 첨지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늙은 노 첨지가 논 세마지기, 밭두마지기 를 돌려주고
꽃다운 열일곱 막실이를 사와서 재취로 들여놓았다.
흑단 머리에 백옥 같은 살결, 또렷한 이목구비에
아직도 솜털이 가시지 않은 꿈 많은 이팔청춘 막실이.
줄줄이 어린 동생들 배 굶기지 않겠다고 제 어미 눈물을 닦아주고 제 발로 노 첨지에게 간 것이다.
노 첨지네 식구들은 단출하다.
막실이와 동갑내기인 노 첨지의 무남독녀와 우람한 덩치의 총각 머슴이 가족의 전부다.
낯선 집에 안주인으로 들어온 앳된 막실이 눈에는
모든 게 아리송하기만 하다.
노 첨지의 딸, 홍심이는 막실이에게 엄니 소리를
한번도 하지 않고 막실댁이라 부르다가
노 첨지에게 혼쭐이 나고도 여전히 막실댁이다.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수밀도 엉덩이를 흔들며
마실 다니는 모습엔 바람끼가 솔솔 풍긴다.
허우대가 멀쩡한 머슴 억쇠는 남의 눈을 피해 홍심이
엉덩이를 툭툭 치는 게 보통 사이가 아닌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천하의 노랭이 노 첨지가 칠년째 새경 한푼 주지 않고 억쇠를 머슴으로 부려먹는 데는
그럴 듯한 낚싯밥을 던져 놔야 하는 것이다.
외동딸 홍심이 열여덟살이 되면 억쇠와 혼례를 올려 주겠노라고 철석같이 약조를 한 터이다.
쉰두살 노 첨지는 꾀만 똑똑 흐르지 몸은 벌써 노인이라 거름 한 바소쿠리 지게를 지고 일어설 힘도 없어 머슴을 들였는데 새경 주기는 아까워 딸을 주겠다고 약조를 해버렸다.
그때가 딸 홍심이 코흘리개 열살 때라 팔년이나 세월이 남았으니 그 사이에 무슨 수를 써서 쫓아내겠지 했는데 세월은 쏜살같이 흘러 내년이면 홍심이가 벌써 열여덟 살이 되는 것이다.
노 첨지는 큰 부자는 아니다. 논 스무마지기 남짓에 밭이 열두마지기, 남에게 아쉬운 소리하지 않는 중농 집안이다.
하기야 논 스무마지기, 밭 열두마지기가 어디 적은 재산인가. 노 첨지가 움켜쥐고 있는 이 재산을 노리는 사람은 세 갈래다.
첫째는 무남독녀 홍심이요, 둘째는 노 첨지의 마누라가 된 막실이, 세번째 또 한 사람이 있으니 바로 방물장수다.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빤질빤질한 방물장수는 억쇠가 들에 나간 사이 홍심이 방에 들어가면 “킬킬 호호호” 나올 줄을 모른다.
막실이는 영악스럽다. 친정에 논 세마지기, 밭 두마지기 찾아 주고 꽃다운 청춘을 삭혀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노 씨네 족보에 이름을 올려놓고선 노 첨지가
빨리 이승을 하직할 날만 기다렸다.
방법은 하나, 노 첨지의 기(氣)를 빼는 것이다.
매일밤 온갖 기교로 노 첨지의 진을 빼니 인삼 녹용을 쏟아부은들 배겨낼 재간이 있겠는가.
노 첨지는 하루가 다르게 시들어 가더니 마침내 딱딱 꼬쟁이가 되어 드러누웠다가 석달을 못 넘기고
저승으로 가버렸다.
홍심이가 아버지 상을 치르고 가만히 돌아가는 꼴을
보니 팔짱만 끼고 있을 계제가 아니다.
막실이가 족보에 제 이름을 올린 것을 알았고,
또 내년이면 머슴 억쇠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홍심이가 제 아버지 사랑방 다락에 올라가 궤짝을 열어보니 일곱마지기 논문서와 네마지기 밭문서만 남아 있었다.
막실이 선수 친 걸 알았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이를
가는 것뿐이다.
홍심이는 막실이가 남겨준 그것만 챙겨 방물장수와 멀리멀리 도망쳤다.
억쇠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어 울고불고
땅을 치는데 막실이 그 앞에 앉아 술 한잔을 따라주며,
“억쇠씨, 칠년치 새경을 받아 이 집을 떠날테요?
아니면 가시버시가 되어 여기서 살테요?”
억쇠가 눈을 왕방울만 하게 뜨고
“가시버시? 누구와?”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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