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주산성(幸州山城)과 행주치마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아녀자들이 행주치마로 돌을 날라와 승리했기에
그 성이 행주산성(幸州山城)이 되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행주(幸州)에 성(城)을 지은 것은 삼국시대(三國時代)이고 행주라는 지명이 생긴 것은 900년대였다.
행주대첩(幸州大捷)은 1593년, 덧입는 치마라는 뜻의 행주치마는 순우리말로
1527년 최세진(崔世珍)의 <훈몽자회-訓蒙字會>에 나오므로 둘은 아무 관계가 없다.
선조실록(宣祖實錄), 징비록(懲毖錄), 권율(權慄)의 비문(碑文) 그 어디에도
행주치마로 이겼다는 기록은 없다.
물론 아녀자들이 돕기도 했겠지만 행주대첩 승리의 원동력은 화차(火車) 때문이었다.
그리고 행주산성을 가보면 알지만 온통 흙이지
날라다가 던지고 자시고 할 돌멩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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