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과 자궁골짝
예로부터 해는 남자를, 달은 여자를 상징한다. 낮을 지배하는 해는 늘 밝고 둥글지만, 밤을 비추는 달은 주기적으로 그 상태를 달리한다. 달은 무無에서 출발해 보름 만에 가득 차고, 한 달 만에 다시 기운다. 이는 여자의 신체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여자들이 임신하면 배가 불러오는 것이나 월경을 하는 것이 그것이다. 음양오행설에서는 해를 태양(太陽), 달을 (太陰)으로 여긴다. 이를 기준으로 만든 달력 체계가 양력(太陽曆)과 음력(太陰曆)이다. 달 가운데서도 보름달은 음의 기운이 가장 충만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원시 시대의 남자들은 달을 유혹자라고 상상하기도 했다. 월경 때문에 금욕을 하는 밤마다 달이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한다고 생각했다. 여자들은 그런 달을 자신들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숭배했다.
어린시절, 내가 살던 자궁골짝에 보름달이 주인이던 밤이 있었다. 이른 저녁부터 동쪽 산마루에서 빼꼼히 얼굴을 내밀던 보름달은 어느 새 중천에 떠올라 마을을 환히 비추었다. 그런 밤에는 대낮인 양 마을이 온통 시끄러웠다. 아이들은 뒷동산에 모여 숨바꼭질을 하느라 떠들썩하고, 남정네들은 밤마실을 나가면 아낙네들은 삼삼오오 모여 개울가에서 빨래를 하거나 목욕을 하느라 키들거렸다. 밤이 이슥해질 때까지 차마 잠이 오지 않은 처녀들이 울타리를 환하게 기웃거리는 달빛의 유혹에 이끌려 밖으로 나오면, 덩달아 총각들이 뒤를 따라 합류하면서 자연스럽게 어울려 밤새 들판을 쏘다녔다.
그런 밤에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짐승들도 가만있지를 않았다. 동구밖 당산나무에는 손전등을 두 개나 켜든 부엉이가 와서 저음의 목청으로 울고 , 뒷산에서는 여우가 멀리 있는 짝을 부르며 끄엉끄엉 길게 울었다. 들쥐들도 논두렁을 이리저리 달리며 정신없이 찍찍거리며 사랑을 갈구하였다. 융융한 안개가 구렁이처럼 산허리를 감싸며 흐르고, 멀리 바라다 보이는 바다도 만삭으로 그렁그렁 차올라 윤슬처럼 찬란히 반짝거렸다. 모두가 보름달이 연출한 황홀한 밤의 풍경이었다.
한번은, 보름달을 등불 삶아 둠벙 가에서 빨래를 하던 처녀가 홀연히 사라진 일이 있었다. 사람들은 마을을 온통 뒤지며 수소문했지만 빨랫감만 덩그마니 남아 있을 뿐 찾을 수 없었다. 경험 많은 한 남정네가 긴 잔짓대를 가져와 우물 속을 휘젓자, 머리를 헤쳐 푼 처녀가 수면 위로 불쑥 떠올랐다. 사람들은 물귀신의 짓이라며 다음날 우물을 메워버렸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진범은 보름달과 우물이었음을 나는 안다. 보름달이 뜬 밤 달빛이 비치는 우물은 거울이 된다.
거울은 달빛을 반사시키고, 그 눈부신 달빛에 홀려 정신이 혼몽한 처녀는 몽유병 환자처럼 자진하여 우물 속으로 걸어 들어갔던 것이다. 달과 더불어 또 다른 여성성의 상징인 물은 이렇듯 사람을 유혹하는 마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물가에 가지 말라"거나 "물을 오래 쳐다보지 말라"는 어른들의 당부를 무수히 들으며 자라지 않았던가. 이를 어른들은 물귀신이 잡아가니 그런다고 했지만, 사실은 물이 지닌 마력 때문이었던 것이다.
또 한번은,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어김없이 밀밭이나 보리밭이 쓰러지는 일이 잦았다. 처음엔 떼를 지어 들판을 쏘다니며 놀던 처녀총각들은 나중엔 서로 눈이 맞은 사람끼리 짝을 이뤄 은밀한 데이트를 즐겼다. 분위기가 한껏 달아오를 무렵 그들은 주변에 누렇게 익은 밀밭이며 보리밭으로 자연스럽게 걸어 들어갔다. 그때마다 밀이며 보리들이 움푹움푹 쓰러졌다. 다음날 논밭을 둘러보던 주인은 "어느 연놈들이 애써 지은 농사를 다 망쳐놓았군" 하며 혀를 끌끌 차면서도 입가에는 어느새 커다란 보름달이 걸려 있었다. 말하자면 마땅한 사랑의 장소가 없었던 그 시절 밀밭과 보리밭은 더 없이 좋은 자연모텔이었던 셈이다.
실제로 밀밭에서 연애하여 태어난 아이가 있었다. '달복'이라는 이름을 가진 머슴의 딸 '밀례'였다. 모두들 그 계집아이를 자연산이라고 불렀다. 황홀한 보름달의 자식이었다. 당시 마을에는 '밀례', 말고도 '-례' 자가 붙은 자연산 이름을 가진 계집아이들이 여럿이었다. 밭을 매다가 낳았다고 하여 '밭례', 모를 심다가 낳았다고 하여 '논례', 뽕밭에서 뽕을 따다가 낳았다고 하여 '뽕례', 뒷간에서 일을 보다 낳았다고 하여 '똥례', 제발 딸 좀 그만 낳고 싶다고 하여 지은 '끝례' 등이 그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재미있으면서도 생생한 삶의 현장감이 묻어나는 자연산 이름들이었다.
세월은 흘러 나도 보름달밤이 아름다웠던 자궁골짝을 떠나 문명의 도시로 이주한 지 올해로 45년째에 접어든다. 아파트 18층 거실에 앉아 유리창 너머로 떠오르는 삭막한 달을 바라볼 때마다 매번 향수에 젖곤 하던 나는 최근 보름달이 뜨는 날을 골라 그토록 그리워하던 고향 자궁골짝을 다녀왔다. 그러나 너무 늦게 와서인지 고향은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마을사람들은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지고, 60여 가구가 넘던 마을은 폐촌이 되어 폐허처럼 낯설고 을씨년스러웠다. 텅 빈집과 허물어진 담장들을 비추며 적막한 달빛만 쏟아져 내렸다.
문명이 이곳까지 쳐들어온 지 오래딘지 들판엔 아파트들이 군데군데 보이고, 처녀총각들의 연애 장소로 유명하던 밀밭이며 보리밭 위엔 하필이면 인공모텔이 들어서 보름달보다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불빛이 반짝거렸다. 나는 아무도 없는 들판을 홀로 거닐며 지금은 사라진 옛 이름들을 가만히 불러보았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추억이 너무 쓰리고 아파 사흘 동안을 몸져누웠다. 자연과 인간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던 자궁골짝의 밤은 이제 신화로만 내 마음속에 남아 있을 뿐이다.
- 김선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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