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생원이 그린 조잡한 그믐달
모두가 조롱하고 비웃는 그림을
부자 영감이 비싼값에 사가는데…
지필묵 장수, 우 생원이 어느 날부터인가 화공(畵工)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저잣거리 화상(畵商)들이 몰려 있는 곳에 제 그림을 들고 나타난 우 생원은 웃음거리가 되었다.
모든 화상들이 외면하는데 어느 짓궂은 화상이 우 생원을 놀리며 그림이나 한번 보자고 두루마리 족자를 펼쳤다가 가게가 뒤집어지도록 폭소를 터뜨렸다. 감나무 가지에 걸린 그믐달 그림이다.
“우 생원, 달을 그리려면 둥근 만월을 그리든가 새로 태어나는 초생달을 그려야지 기울어지는 그믐달을 그려 놓으면 누가 사가서 자기 집 벽에 걸겠는가. 쯧쯧쯧…”
그림도 조잡하기 짝이 없었다.
“어르신, 전시나 좀 해주세요. 팔리면 어르신이 칠을 먹고 제게는 삼만 주세요. 그런데 절대로 백냥 이하로는 팔지 마세요.”
화상과 시중의 웃음소리를 뒤로 하고 우 생원은 사라졌다. 화상은 어이가 없었다. 행세깨나 한다는 화공들의 그림값이 삼사십냥 하는데 백냥 이하로는 팔지 말라니!
“양심껏 지필묵 장사나 할 것이지. 보령 벼루를 단주명연 마자갱이라며 바가지를 씌우다가 사기죄로 옥살이를 하고 나오더니 머리가 돌아버렸는갑네.”
화상은 두루마리 족자를 걸지 않고 둘둘 말아 구석에 처박아 버렸다. 한달쯤 지났을까. 황금교자를 타고 온 부티나는 영감님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화상 가게에 들어와 이 그림 저 그림을 보며 모두가 마음에 안 드는지 고개를 젓더니 구석에 말려 있는 족자를 펼치다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세상에 둘도 없는 독특한 화풍이야.” 보고 또 보더니 “주인장, 이거 얼마요?”
화상은 난감해졌다. 백냥이라고 말하면 귀싸대기를 맞을 것 같고 크게 낮춰서 말했다가 진짜로 사가면 우 생원한테 생돈을 물어야 할판이라 망설이다가 “웬 미친놈이 이걸 맡기고 백냥을 받아 달라지 뭡니까” 웃으면서 말하자 “열냥만 깎아주시오”하면서 구십냥을 내고 보물덩어리를 주은 양, 그믐달 족자를 품속에 넣고 가마를 타고 가버렸다.
“우 생원이 이 마을에 산다고 했지. 헉헉.” 화상이 거금 구십냥을 허리에 차고 싸릿골을 숨차게 오르고 있었다. 우 생원네 사립문을 열고 들어가 “우 화공, 이것 좀 보시오.” 단번에 우 생원을 대하는 말씨부터 달라졌다.
“우 화공, 그믐달 그려 놓은 것 더 없소이까?” 화상은 그림 세점을 들고 갔다. 매화 위에 걸린 그믐달, 눈을 덮어쓴 노송(松) 위에 걸린 그믐달, 절간 처마 위에 걸린 그믐달.
화상이 그믐달 그림을 가게에 걸어놓자, 비단 장옷을 입은 부인이 사가고 도포를 입은 부자가, 백마를 탄 선비가 불과 보름 사이에 모두 사갔다.
장안에 그믐달 그림 돌풍이 불었다. 그믐달 그림값이 뛰기 시작했다. 저잣거리 왈패들인 우 생원 아들 셋은 이 고을 저 고을에서 입에 풀칠하기 바쁜 화공들을 데려와 이방 저방 이웃집 방도 빌려서 그들을 처박아 넣고 그믐달을 그리게 했다.
다른 화공들이 그린 그림 아래 우 생원의 낙관을 찍어 화상들에게 뿌렸다. 우 생원은 화상들에게 그믐달 그림 한점에 이백냥씩 받고 팔면서 그림을 그린 화공들에겐 다섯냥밖에 주지 않았다.
젊은 화공 하나가 “내 굶어 죽어도 이 짓은 못하겠다”며 왈패 아들 셋이 지키는 삼엄한 경비를 뚫고 도망쳐 나가 사또에게 고했다. 포졸들이 잡아온 우 생원을 보고 사또가 “네놈은 가짜 벼루를 명품이라고 속여 사기죄로 옥살이를 한 놈이 아니냐!”
곤장 몇 대에 우 생원은 다 털어놓았다. 처음에 황금교자를 타고 와서 구십냥에 그믐달 그림을 사간 사람, 그 후에 또 세점을 사간 사람들 모두가 우 생원의 사주를 받은 바람잡이였다. 우 생원은 곤장 서른대를 맞고 옥에 갇힌 몸이 되었고, 왈패 아들 셋은 뿔뿔이 흩어졌다.
몇 년이 흘렀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 우 생원은 옥사하고, 잠적한 아들 셋의 수배령이 해제되었다.
새벽에 뜨는 숫처녀 눈썹 같은 그믐달은 아무나 볼 수 있는 달이 아니다. 검은 덩어리 셋이 이쪽저쪽에서 오다가 싸릿골 어귀에서 서로 만났다. 한놈은 술주정뱅이, 또 한놈은 노름꾼, 나머지 한놈은 도둑놈이다. 우 생원의 세 아들이다. 싸늘한 하늘에 그믐달이 걸렸다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36)그믐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