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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반사/感動.野談.說話

혁신(革腎)

by 가마실 2022. 7. 2.

최고급 가죽신 만드는 ‘노박’ 어느 날 은밀한 의뢰를 받는데 …

 성은 노가요 이름은 박, 열여섯살 노박이 가죽공방에서 일한 지 십년이 됐다. 여섯살 때 가죽공방에 들어와 코를 흘리며 잔심부름을 하다가 오년만에 가죽을 만진 노박은 눈썰미가 있고 손재주도 남달랐다. 가죽공방에서는 가죽신발을 만들어 부잣집 아녀자나 고관대작에게 팔았는데, 가죽에 요철 문양을 넣는 값비싼 신발을 만드는 일은 최고 솜씨를 인정받은 노박의 차지다.

 어느 날 공방에 한 부인이 찾아왔다. 대갓집 마님이나 여염집 부인하고는 무엇인가 좀 달랐다. 차림새부터 짧은 저고리 깃단이나, 치마끈을 아래로 내려 묶어 엉덩이 두쪽이 수밀도처럼 드러난 것이나, 코를 찌르는 박가분 냄새, 헤픈 웃음, 살랑대는 걸음걸이….

 신발을 쭉 훑어보더니 그녀가 꼭 집어낸 것은 요철 문양이 들어간 최고급 신발이었다. 따라다니던 주인 영감님이 “그건 작업시간도 보름이나 걸리고 값도 엄청 비싼 신발이오.” 앞서 걷던 그 여인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홱 돌리더니 “돈 걱정은 말아요.” 소리를 질렀다.

 서른이 조금 넘었을까 한참 무르익은 여인은 도끼눈을 해도 미인이었다. 주인 영감님이 노박을 붙여줬다.

 “신코를 반의반치쯤 올리고 뒤꿈치를 한치 올리고….” 이렇게 되면 균형이 흐트러져 모양새도 안 나고 걸음걸이도 불안정해질 게 뻔하지만, 주인 영감님에게 소리지르는 걸 들은 지라 영악한 노박은 두손을 비볐다. 그 여인이 살짝 돌아서더니 묘한 미소를 노박에게 보냈다. 한지 위에 여인의 버선발을 놓고 치수를 그렸다. 여인은 가끔 간지럽다는 듯이 눈을 흘기며 노박의 등을 토닥토닥 때렸다.

 “초이렛날 가봉을 하겠습니다.” 여인이 뭔가 생각하더니, “총각이 우리 집으로 가봉하러 오면 안될까?”

 초이렛날, 못다 기운 가죽신발을 비단보자기에 싸들고 노박은 그 여인이 가르쳐준 집으로 찾아갔다. 두어식경을 걸어서 찾아간 아담한 기와집에는 그녀와 늙은 노파 한사람뿐이었다. 그녀는 반갑게 노박을 맞아 안방으로 데리고 갔다.

 “한번 신어 보시지요 마님.”
 “뭐가 그리 급한가. 밥때가 되었는데 배를 채우고 하지.” 노파가 상을 들고오더니 쟁반에 술상도 차려왔다. 진수성찬에 매실주까지. 세식경이나 지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노박이 그 여인집에서 나와 비틀거리며 공방으로 돌아갔다. 점심때 전에 나갔던 노박이 저녁나절이 가까워서야 불콰해서 돌아왔지만 주인 영감님은 끓는 화를 내색하지 않았다. 노박이 아니면 그렇게 비싸게 판 가죽신발을 마무리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날부터 노박이 혼자 불을 밝히고 아무도 없는 공방에서 밤작업을 시작했다.

 마침내 공주님 신발보다 더 예쁜 그 여인의 가죽신발이 완성되었다. 연두색 신발에 새빨갛게 양각된 매화 꽃송이! 노박은 세수를 하고 깨끗하게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비단보자기에 신발을 싸서 그 여인집으로 갔다. 여인은 야릇한 미소를 띠며 노박을 데리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비단보자기를 풀자 화려한 가죽신발이 모습을 드러냈다.

 허나 그 여인은 신발은 본체만체 “내가 은밀히 부탁한 것은?” 노박이 말없이 품속에서 비단주머니를 꺼냈다. 여인이 돌아앉아 주머니끈을 풀고 탄성을 질렀다. 노박이 안방을 나와 옆방으로 들어가 주안상을 받았지만 귀는 안방으로 쏠렸다. 여인의 흐느낌이 새어나와 노박을 발갛게 달궜다.

 신발값으로 일반 가죽신의 열배인 큰돈을 받아 주인 영감에게 갖다줬지만 노박의 주머니엔 신발값보다 더 큰돈이 들어 있었다. 그 뒤부턴 입소문이 퍼져 은밀하게 여기저기서 주문이 들어왔다. 노박은 가죽공방을 그만두고 자기 집 헛간에 공방이랄 것도 없이 조그맣게 가죽일터를 꾸렸다. 하루는 그 여인이 노박을 찾아와 “내 친구들이 부탁하네. 그전의 물건 같은 걸 세개 더 만들어주고 하나는 좀더 크게 한치를 늘려서, 에~ 그리고….” 노박의 귀를 당겨 “힘줄을 더 튀어나오게 만들어줘. 알았지!”

 어느 날, 포졸들이 들이닥쳐 노박을 포승줄로 묶어 사또에게 끌고 갔다.

 “네놈이 우리 고을을 풍기문란에 빠뜨린 노박이란 작자냐?”
 “노박은 맞습니다만 풍기문란을 일으킨 적은 없습니다.”

 “이게 네놈이 만들어 비싸게 판 물건이 아니란 말이냐?” 사또가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나무로 만든 남자의 물건, 목신(木腎)이 아니라 가죽으로 만든 혁신(革腎)이다. 얼마나 정교한지 바지춤을 내리고 바로 꺼낸 성난 물건과 진배없다.

 “사또 나으리, 제가 만든 그 물건이 풍기를 어지럽힌 것이 아니라 오히려 풍기문란을 사전에 방지하는 예방효과가 있다는 걸 통촉하여 주십시오.”

 띵~ 사또가 한방 맞은 기분이다. 할 말을 잃고 있던 사또가 빙긋이 웃으며, “일리 있다.”

 그 여인은 누구인가? 바로 사또의 첫째첩이다. 요즘은 사또가 셋째첩에게 빠져서 첫째첩 사타구니에는 곰팡이가 필 참이다.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81)혁신(革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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