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나무
중앙 열매, 우측위 암꽃, 좌측 수꽃
삼나무는 아득한 옛날부터 일본의 개국신화에 나올 만큼 그들이 자랑해 마지않는 일본 나무다.
이처럼 그들의 시조 신(神) 이야기는 물론 하이쿠(俳句)를 비롯한 문학작품에까지 삼나무는 빠지지 않았다.
그만큼 일본에서는 흔한 나무이면서 동시에 나무로서의 좋은 점은 다 가지고 있다.
줄기는 곧바르게 집단으로 모여서 아름드리로 잘 자라며, 없어서 못쓸 만큼 쓰임새가 넓다.
삼나무는 섬나라인 일본에서 꼭 필요한 배 만들기를 비롯하여 집을 짓고
각종 생활도구를 만드는 데 제몫을 톡톡히 했다.
특히 삼나무로 만든 술통은 나무속의 성분이 녹아 나와 술의 향기를 증가시킨다고 알려져 있다.
한마디로 일본인들에게는 신이 내린 축복의 나무다.
삼나무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련만 불공평하게도 하느님은 편백, 화백,
금송 등 좋은 나무를 또 보태어 일본열도에만 심어주었다.
바로 바다 건너의 이런 좋은 나무에 대하여 우리의 선조들은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다.
정약용의 《아언각비(雅言覺非)》각주2) 에 그 이름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개화 이전의 조선왕조 때는 일본의 삼나무를 남부지방에 따로 심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공주의 무열왕릉에서 나온 목질유물의 일부, 부여 궁남지의 목간(木簡) 등
우리의 문화유적에 가끔 삼나무로 만든 유물이 나온다.
그러나 옛날 한반도에서는 삼나무를 심지 않았으니 모두 일본에서 직접 만들어 가져온 것으로 추정된다.
문헌으로는 《고려도경》 제29권 〈공장(供張)〉의 ‘삼선(杉扇)’에 보면
일본백삼목(日本白杉木)을 종이처럼 얇게 쪼개서 부채를 만들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고려 때에도 일본에서 삼나무 자체는 수입하여 사용하였으나 씨를 가져다 심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삼나무를 우리나라에 대량으로 심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00년대 초부터다.
곧게 빨리 자라는 나무이니 재목을 생산할 목적이었다.
다만 추위를 싫어하므로 경남과 전남의 해안지방에서부터 섬 지방에 주로 심었다.
한편 제주도에서는 목재 생산보다는 귤 밭의 방풍림으로 심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른다.
남해안지방에서는 우리의 고유 수종인 곰솔이나 비자나무를 제치고 가장 널리 퍼져 있는 나무가 되었다.
그러나 삼나무는 어디까지나 일본의 대표 바늘잎나무다.
이런 사연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의 문화유적지,
특히 한산도를 비롯한 이순신 장군의 유적지까지 삼나무를 심어 댄다.
목재 생산을 목적으로 산에 심는 것이야 시비를 걸 생각이 없지만,
적어도 항일유적지에는 삼나무 심기를 삼가야 옳을 것 같다.
삼나무는 늘푸른 바늘잎 큰 나무로 키 40미터, 지름이 두세 아름은 보통인 거목이다.
잎은 약간 모가 나고 길이는 손가락 한 마디 정도로 송곳처럼 차츰 가늘어져 끝이 예리하다.
암수 한 나무이고 꽃은 초봄에 피고 열매는 가을에 익는다.
솔방울은 적갈색으로 직경 2센티미터 정도로 둥글며, 씨는 각각의 솔방울 비늘 조각 안에 3~6개씩 들어 있다.
편백과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나무 중 하나다.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국민 나무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삼나무 꽃가루는 심한 알레르기를 일으켜 일본 국민의 20~25퍼센트가 해마다 고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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