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나눴던 심마니 금봉이 발길 끊자
과수댁, 결심한 듯 관아로 향하는데…
입동이 지난 이맘때는 심마니의 한철이다. 서리 맞은 풀은 드러눕고 새빨간 산삼 열매는 고개를 바짝 쳐들기 때문이다. 심마니에게 늦가을 찬비는 질색이다. 산골짜기, 외딴 오두막 너와집 굴뚝에 연기는 물씬 피어오르고 멍석을 깐 방바닥은 뜨습다. 금봉이는 야속한 비만 탓하며 뒹굴뒹굴 구르고 있었다.
“심마니 총각 있는가?”
누군가 낭랑한 목소리로 사립문을 열고 들어와 툇마루에 엉덩이를 걸쳤다. 금봉이가 문을 열고 내다보니 아랫마을 과수댁이다. 과수댁이 방에 들어와 들고 온 보자기를 풀었다. 아직도 김이 나는 장떡에다가 머루술 한호리병이 나왔다. 배는 고픈데도 밥해 먹기 귀찮아 뭉그적거리고 있던 금봉이는 머루주 한잔 마시고 장떡을 볼이 터지라 입에 쑤셔 넣었다.
“과수댁도 한잔하시오.”
과수댁이 “거참, 과수댁 과수댁 하지 말고 누님이라고 불러” 하더니 용건을 털어놓았다.
“가슴이 울렁거리고 술 취한 듯 얼굴이 달아오르고 숨이 찬 데는 하수오를 달여먹어야 한대.”
“아~마침 봐둔 데가 있어요. 요즘은 산삼을 찾느라 하수오 캘 시간이 없어요. 내년 봄에 캐려고 했는데 마침 과수댁이, 아니 누님이 찾으니 내일이라도 캐야지요.”
이튿날 밤, 아랫동네 과수댁에 금봉이가 하수오를 들고 찾아갔다. 꽤액 닭 잡는 소리가 나더니 개다리소반에 백숙과 술 한호리병이 올라왔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우고 더덕술도 다 마시고 나자 금봉이는 벽에 기대어 앉은 채 배를 두드리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부엌에서 철퍼덕 소리가 나더니만 과수댁이 묘한 미소를 띠며 방으로 들어와 “치마가 다 젖었네” 하곤 치마를 훌렁 벗느라 호롱불이 꺼졌다. 벽에 기대 두 다리 쭉 뻗고 있던 금봉이가 조끼 주머니에서 부싯돌을 꺼내는데 물컹, 허벅지 위를 누군가의 방뎅이가 짓눌렀다. 고쟁이도 벗어버리고 홑치마만 입은 과수댁은 벌써 숨소리가 가빠졌다. 연거푸 이합을 치르고 금봉이가 쓰러지자 과수댁이 호롱불을 켰다. 금봉이는 이불에 얼굴을 묻었다.
밤참을 먹고 삼합·사합을 치르고 새벽닭이 울 적에 금봉이는 집으로 돌아갔다. 이튿날 후들거리는 다리로 산을 탔다. 가파른 곳에 오르지 않았는데도 산삼 일곱뿌리를 캤다. 여자와 접하고 산을 오르면 발아래 산삼도 보이지 않는다는 말은 사기여!
저녁나절 어둠살이 내리자 금봉이는 남의 눈에 띌세라 도둑고양이처럼 과수댁 안방으로 스며들었다. 캐다가 부러진 산삼을 와그작 먹어 치우고 온 산을 쉼 없이 헤매고 다녀 기운이 장사인 열아홉살 금봉이와 한창 물이 올라 색기가 뻗는 서른여덟살 과수댁이, 물꼬가 터지자 불처럼 타올랐다.
그 가을에 무슨 꿈을 꿨는지 금봉이는 산삼을 도라지 캐듯 했다. 동지섣달 산에는 눈이 쌓였어도 금봉이에게는 따듯한 겨울이 찾아왔다. 금봉이가 한약방에 맡겨놓은 돈이 논 열마지기값이라는 둥, 소문이 떠돌자 매파의 발걸음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강 건너 마을 오 생원의 셋째딸이 금봉이 가슴에 꽂혔다.
설날, 과수댁은 떡국을 끓여놓고 금봉이를 기다리는데 금봉이는 강 건넛마을로 가 동네 윷판에 섞여 가까운 발치에서 오 생원의 셋째딸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금봉이 가슴이 방망이질했다. 매파가 왔다갔다하며 춘삼월 초이레로 혼례 날짜를 정했다. 금봉이는 과수댁에 발길을 딱 끊었다. 과수댁이 금봉이집 문고리를 흔들어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사또가 동헌 마루에 앉아 송사를 가늠하고 동헌뜰에서는 송사 당사자 둘이서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피고는 금봉이고 원고는 과수댁이다.
“쇤네가 가슴이 울렁거리고 얼굴이 달아올라 이 심마니에게 하수오를 부탁했습니다.” 과수댁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튿날 밤 저 인간이 하수오를 들고 쇤네 집에 오더니…. 으흐흐흑.” 말끝을 맺지 못하고 흐느끼더니 “홀몸이라고 업신여겨 쇤네를 덮쳐 겁탈했지 뭡니까.”
“아닙니다, 그게 아니고….” 금봉이의 반론은 씨가 먹히지 않았다. 사또가 고함쳤다.
“저놈에게 곤장 스무대를 안기고 삼년 동안 옥에 가두어 두도록 하라~” 금봉이가 소리쳤다. “단 한번 방사에 벌이 너무 과합니다. 나으리!”
“한번이라니! 서른번도 넘습니다요. 쇤네가 달력에 다 적어놓았습….” 말끝을 맺지 못하고 제 말에 제가 놀랐다.
“심마니는 풀어주고 과수댁은 형틀에 묶어 매우 쳐라.”
형틀에 묶어 방뎅이를 드러내자 과수댁이 이실직고했다. 육방관속이 과수댁 희멀건 방뎅이만 구경하고 풀어줬다.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297)과수댁과 심마니 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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