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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반사/感動.野談.說話

돌아온 배 생원

by 가마실 2022. 11. 16.

 

배 생원의 젊은 후처 태기 비치자 두 며느리들은 아연실색하는데…

소금장수 보부상 배 생원이 술 한잔을 나누고 주막집 객방에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지난달엔 동료 보부상 우 서방이 허리가 아파 고향으로 돌아가고, 어제는 연배도 아래인 박 서방이 무릎이 나가 고향집까지 걸어갈 수도 없어 기약 없이 주막 구석방에 처박혀 쑥뜸만 뜨는 것이다.

보부상은 무거운 등짐을 지고 고개 넘고 내 건너, 걷고 또 걷는 게 일이라 마흔살 언저리에서 허리에 무릎에 고장이 나기 마련이다. 배 생원도 가끔 무릎이 시큰거려 눈 질끈 감고 이만할 때 그만두기로 했다. 보부상을 접기로 한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다. 집이 그리운 것이다. 다음날 새벽 소금가마를 챙겨 떠날 걱정하지 않고 마누라 엉덩이 두드리며 제 집 안방에서 스르르 눈을 감고 꿈나라로 가고 싶은 것도 그 일을 그만두는 데 큰 몫을 차지했다. 배 생원은 허구한 날 객지를 돌아다니며 저녁에 술 한잔은 마셨지만 투전판에 끼어들지 않았고 여색도 밝히지 않아 이제껏 참하게 돈을 모았다.

부푼 가슴을 안고 고향집에 돌아오니 마누라가 병석에 누워 있었다. 남편 돌아온 줄도 모른 채 열이 펄펄 나는 마누라 옆에 아들 두놈과 며느리가 지키고 앉았다. 의원을 데려왔더니 진맥을 한 의원이 “너무 늦었네”라는 한마디 남기고 돌아갔다. 그날 밤을 못 넘기고 마누라는 이승을 하직했다. 시도 때도 없이 술병을 차고 마누라 묘를 찾아 봉분에 기대어 잠이 든 적도 있던 배 생원의 발길이 뜸해질 녘 매파가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큰며느리는 매파가 집 안에 발도 못 붙이게 막아섰다.

“어머님 탈상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매파가 들락날락하는 거야~. 남의 눈도 생각해야지.”

매파가 직접 배 생원을 만나게 해달라고 떼를 써도 수문장처럼 막아선 큰며느리는 막무가내다. 아랫동네로 세간 난 작은아들 내외도 큰아들네와 다를 바가 없었다. 배 생원의 형님과 당숙 등 친척 어른들이 찾아와 배 생원을 다그쳤다.

“아직 마흔도 안됐는데 홀아비로 한평생 살아갈 거야?”

재혼하지 않을 거라는 소문과 달리 배 생원은 계면쩍은 웃음을 흘리며 “마땅한 혼처도 없고…” 했다.

배 생원이 재혼할 생각이 있다는 것이 드러난 셈이다. 그날 밤, 두 형제와 두 며느리가 남몰래 모여 머리를 맞댔다.

“이제 할 수 없네. 우리가 찾아야 해.”

맏아들의 주장에 모두가 의견일치를 봤다. 그들이 찾는 새어머니의 조건은 아이를 낳지 않는 여자다. 배 생원의 나이는 마흔이 안됐고 허벅지는 아직도 씨름꾼 그것인데 아이를 만들라치면 열인들 못 만들 것인가! 두 아들놈의 속셈은 뻔하다. 아버지가 아이를 자꾸 낳으면 형제들이 늘어나고 자신들에게 돌아올 재산 몫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며느리 둘이 서너달 넘게 설치고 다니더니 딱 마음에 드는 새 시어머니감을 찾아냈다. 손이 끊어져가는 부잣집에 시집갔다가 아이 못 낳는 석녀(石女)라고 쫓겨나 친정집에 와 있는 스물네살 과부였다. 배 생원 며느리 둘은 보물단지라도 찾은 듯 희색이 만면하고 작은며느리는 처음 만난 석녀의 손을 잡고 “어머님~” 하며 촐싹거렸다.

그 석녀가 삯바느질로 병든 아버지를 부양하고 있어 배 생원 두 며느리가 장롱 속 패물과 금붙이를 팔아 오백냥을 만들어 시어머니감 석녀에게 안겨줬다. 혼사는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때가 마침 꽃 피고 새 우는 춘삼월이라 얼른 혼례식을 올렸다.

배 생원이야말로 효부 며느리 덕택에 보물단지를 얻었다. 첫날밤을 지내고 나니 새하얀 요 위에 새빨간 핏자국이! 배 생원이 깜짝 놀랐다. 손이 끊어져가는 부잣집에 팔려가다시피 시집갔는데 신랑이라는 배불뚝이 영감님이 아무리 용을 써도 속궁합이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배 생원은 놀라서 춤을 췄지만 며느리들은 놀라서 털썩 주저앉았다.

부인의 배가 불러오자 배 생원은 입이 귀에 붙었다. 그런데 인물 좋고 마음씨 곱고 젊은 보물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배 생원이 다그치고 다그쳐 물었더니 며느리 둘이 명색이 시어머니인 자신을 사기꾼이라 몰아붙이며 우선 오백냥을 돌려달라고 한다는 것이다. 배 생원이 당장 오백냥을 부인 손에 쥐여줬다.

배 생원은 저잣거리에 큰 기와집을 사고 부인을 데리고 이사를 가 소금 도매상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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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은 이삼년 터울로 가을무 뽑듯 쑥쑥 아들을 낳고 소금 도매상은 불난 듯이 쑥쑥 커졌다.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316) 돌아온 배 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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