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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반사/感動.野談.說話

구미호 (지관)

by 가마실 2023. 1. 10.

구미호 (지관)


구월산 도사에게 주역을 배우고 있는 열일곱 총각 지헌은 그날도 저녁나절이 되어서야
30리나 떨어진 집으로 가려고 험한 산길을 타고 있었다검 바위를 돌다가 지헌은 걸음
을 멈췄다자색이 빼어난 어떤 여인이 발목을 감싸 쥐고 있다가 지헌을 보더니 눈물을
글썽이는 것이엇다발목이 삐었다는 여인을 그냥 두고 갈 수가 없어 들쳐 업고 그녀가
가리키는 대로 토끼 길을 따라가자 숲 속에 아담한 기와집이 나타났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여인이 시키는 대로 찬물을 떠 와 그녀의 발목을 주물러 주었다
녀가 홑치마를 올려 희멀건 허벅지를 드러내자 지헌은 고개를 돌렸지만 아랫도리가 뻐
근하게 솟아올랐다그녀는 발목이 씻은 듯이 나았다며 야릇한 미소를 흘리더니 주안상
을 들고 왔다술 한 잔에 몽롱해진 지헌은 그녀의 손에 이끌려 촛불을 끄고 금침 속으로
들어갔다.
 
지헌의 가슴은 두 근 반 세근 반 쿵쿵 뛰었다.
 
생전 처음 여인과 함께 이불 속에 들어간 지헌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반듯이 누웠는데,
벌거벗은 여인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지헌의 옷을 벗겼다그녀의 화려한 방중술에 지
헌은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천둥번개가 치듯 질펀하게 운우가 지나간 후 지헌이 또
한잔 술을 받아 마시자 다시 촛불이 꺼지고 거친 숨소리가 방을 덮었다삼경이 되어서
야 지헌은 그 여인의 집을 나와 후들거리는 발걸음으로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이튿날도 도사의 초막을 나온 지헌은 그 여인에게로 손살같이 달려갔다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지헌의 발걸음은 그 집으로 향했다그러던 어느 날주역 책에 침을 흘리며
졸고 있던 지헌을 바라보며 도사가 헛기침을 했다.
 
네 육신은 곪아 가고 혼은 빠져 가는구나.”
 
도사의 말에 지헌이 고개를 푹 숙이며 한숨을 쉬었다.
 
지헌도 자신이 수척해진 걸 알고 있었다그러나 다시는 그 집에 가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도사 집만 나오면 지헌의 발걸음은 귀신에 홀린 듯 그 여인의 집으로 향했다지헌
의 눈은 흐리멍덩해지고 볼은 쑥 들어가고 팔다리는 가늘어졌다어느 날 도사는 주역을
덮고 정좌한 후 지헌에게 말했다.
 
나는 네 일을 다 알고 있다.
 
오늘이 네가 살 수 있는 마지막 날이다구슬이 네 입으로 들어오면 즉시 삼켜 버리도록
해라그리고는 하늘을 보고 자빠져라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느니라.”
 
그날 밤지헌은 또다시 그 집으로 가 여인과 질펀하게 운우의 정을 나눴다여인은 사랑
을 나눌 때 꼭 구슬 하나를 입에서 입으로 주고받는 묘한 버릇이 있었다지헌이 그 여인
의 입에서 뜨거운 입김과 함께 구슬을 받아 물었을 때 오늘이 네가 살 수 있는 마지막 날
이라고 한 도사의 말이 귓전을 맴돌았다.
 
지헌은 구슬을 꿀꺽 삼켰다그러자 ” 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솟구쳤다.
지헌은 너무 놀란 나머지 하늘을 보고 자빠지라는 도사의 말을 잊어버리고 땅을 보고 납
작 엎드렸다정신을 차리고 보니 기와집과 여인은 온데간데없고 꼬리가 아홉 개가 달린
커다란 암 여우가 혀를 뽑고 죽어 있었다이튿날 도사가 말했다.
 
참 아쉽도다. ”위로 자빠졌으면 하늘을 알게 됐을 텐데 엎어졌으니 땅은 알겠구나.”
 
세월이 흐르고 흘러 지헌은 땅의 풍수에 통달한 이름 있는 지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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