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흥망과 한국에의 적용
국가흥망은 최근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마침내 연구주제로 정하고 국제정치학자
모델스키(G. Modelski)와 정치경제학자 올슨(Mancur Olson)의 이론을 정리하며 시작하게 된다.
전자는 세기(100년)를 국가흥망주기로 제시한 이론이다. 그에따르면 ㅣ500년이후
지난 500년간 패권국은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미국으로 바뀌었고
대략 100년을 사이클로 한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반면 후자는 집단행동이론의 논리에 기초하여 자본주의사회는
'보이지않은 손(소기업)'이 아니라 이익단체가 지배하며 이들은
민주주의에서 배분연합을 형성하며 종국에는 국가경쟁력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후자의 논리가 쇼킹한 것은 60년전 이론이 제시되었고, 40년전 영국, 독일, 일본의 사례로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이 상충한다는 구체적 비교 결과를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비록 영국이 직후 대처정부의 출범으로 극적인 반전이 일어나기 시작할 무렵에 나왔었다.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은 함께한다는 정설은 전통적 자유주의사상의 신념이었고
지난 20세기는 바로 민주주의의 세기였다.
하지만 역사는 민주주의는 결코 이상적 체제도 보편적 체제도 아닌 것임을 보여준다.
실지로 민주주의를 일찌기 꽃피웠던 그리스는 내전으로 쇠퇴하고
종국에는 패망하며 2000년의 기나긴 암흑기를 보냈다.
1세기전 독일은 1차대전으로 맞이한 민주주의(바이마르공화국)를
경제불황과 공산주의운동의 준동으로 파시즘에 자리를 양보했었다.
올슨은 선진국인 영국, 독일, 일본 뿐 아니라 아시아의 용이라는 소국들에도 적용시켰다.
이것은 위대한 경영의 구루이자 GM의 전설 슬로안의 신념과도 일치한다.
그에게 있어 가장 효율적인 체제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독재였다.
하지만 독재는 장기화되고 개인화되면 비효율로 극적으로 바뀐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독재와 전제(정)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전자는 자유질서와 시장경제와 함께한다는 점이다.
마치 독재의 시원인 시저(Julius Caesar)가 교역과 국제화를 중시한 점에서 그러하다.
반면 전제정(autocracy)은 진시황의 경우처럼 자급자족과 격리(쇄국정치)에 근거한다.
지난 2000년동안 서양에 비해 동양의 상대적 쇠퇴는 바로 전제정이 낳은 결과였던 것이다.
그러면 패권국의 적용이론을 한국에 적응하는 것은 타당한가.
올슨이 예로든 아시아신흥국 한국은 건국 70년이 경과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건국과 호국(1948-1960), 조국근대화(1964-1986), 민주화(1987-)로 뚜렷이 구분될 수 있다.
정치적으로 반공권위주의로 시작하여, 개발독재, 민주화로 정리할 수 있고,
국가경제는 전쟁복구기 초기조건의 열악한 상태에서 눈부신 산업화기를 거쳐
IMF로 대표되는 민주화의 침체와 저성장으로 구분가능한 것이다.
모델스키에 따르면 한 국가의 흥망은 대략 100년동안 전환기, 성장기, 침체기,
쇠퇴기로 나눌수 있으며 이러한 25년 주기설은 전쟁과 함께하며 보편적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건국초기 발발한 6.25 를 감안하면 시사적이다.
또한 20세기의 경이라는 한국의 산업화는 자원빈곤과 남북대치에 따른
군사비의 부담을 염두에 둔다면 진정 혁신의 전범이다.
오랜 전제정의 결과 한국인의 국민성, 교육분야 등 사회역량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한국의 대전환은 일찌기 유럽국가들의 산업화 비교연구로 유명한 거센크론이
결론으로 지적한 도전과 응전이란 토인비의 역사 정리가 떠오른다.
그는 작은 도전은 하찮은 응전이, 거대한 도전은 거대한 응전을 낳는다고 결론했다.
돌이켜보면 한국의 산업화를 주도한 세대는 이병철(1910년생), 정주영(1914년생), 박정희(1917년생)에서
보듯 식민지에서 교육받고 태평양전쟁과 6.25를 경험한 전례없는 도전(위기)을 받은 세대였던 것이다.
이들에게 경제발전을 위한 월남전참전과 아라비아 사막은 필연적 선택이었다.
이들에게 게으르고 거짓말하는 조센징은 벗어나야하는 저주였고 인생 자체가 전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민주화는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30년동안 지속되어온 5개년 경제개발계획은 사라졌고,
선진국 진입을 위해 신흥공업국으로서 여러 과제는 잊혀졌다.
민주화 10년만에 IMF를 맞이했으나 정권교체로 진정한 평가는 유보되었다.
정권교체가 치명적인 것은 민주노총, 전교조 등 영국의 석탄노조 같은 카르텔이 분배집단에 편입된 것이다.
또한 친북정책으로 인한 군사외교적 부담도 가중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제 한국은 미중패권전쟁이란 새로운 국제환경에 부딫히고 있다.
모델스키의 이론처럼 미국 패권의 후반기 새로운 패권세력에 의한 도전인 것이다.
이미 미국은 종교(프로테스탄트)와 신념에서 남달랐던 과거의 유일패권국이 아니다.
퀴드와 같은 중국 포위전략에 급급하는 흔들리는 강대국인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식민지와 두차례의 전쟁등으로 5000년 역사상 유례없는 도전을 조국근대화란
찬란한 응전을 보여준 세대는 급속히 사라지고 대신 민주화란 미명속에
약탈계급으로 까지 운위되는 분배연합을 어떻게 극복하고 교양과 규범이 전제되는
진정한 민주선진 사회를 이룰것인가.
60년전 민족중흥과 민족의 저력을 강조했던 위대한 선배세대가 생각난다.
글 / 하봉규교수, 부경대 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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