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고각하 [照顧脚下]
‘조고각하(照顧脚下)’란 자기 발밑을 잘 보라는 뜻입니다.
남을 비판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돌아봐야 하며, 가깝고
친할수록 보다 신경을 쓰고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즉 ‘조고(照顧)’는 제대로 보는 것이나 반성하는 것을,
‘각하(脚下)’는 발밑, 자기 자신을 뜻합니다.
산사(山寺)에 가면 신발 벗어놓는 댓돌 위에 ‘조고각하
(照顧脚下)’라고 쓰인 주련이 걸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발밑을 살피라’라는 뜻이지요.
신발을 가지런히 잘 벗어 놓으라는 뜻도 되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지금, 자기의 존재를 살펴보라는 의미입니다.
밖에서 깨달음을 구하지 말고 현재 처해있는 상황을 스스로
살펴 자신에게서 구하라는 법문입니다.
한편, 불교에서는 ‘본래면목(本來面目)’의 의미로, 밖에서
깨달음을 구하지 말고 자신에게서 구하라는 뜻으로도
쓰이며 또한 각자 자기 발밑을 살펴보아 신발 벗은 자리를
정갈히 하라는 뜻으로 신발을 신고 벗는 곳에 조고각하를
써두기도 합니다.
순간순간 내가 어떻게 처신하고 있는지 돌아보라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조고각하는 남을 비판하기 전에 자신의 과거 언행을
돌이켜 봐야 합니다. 또는 가깝고 친한 사람일수록 보다
신경을 쓰고 조심해야 함을 이르는 말입니다.
‘조고각하’는 ‘삼불야화(三佛夜話)’란 불교 선종(禪宗)과
관련된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는데
중국 송나라 때, 임제종
(臨濟宗)의 중흥조(中興祖)라고 하는 선사(禪師, 선종의
법리에 통달한 승려)였던 오조 법연(五祖 法演)에게는
뛰어난 제자 셋이 있었습니다.
불감혜근(佛鑑慧懃), 불안청원(佛眼淸遠), 불과원오(佛果圓悟)
이 세 제자를 사람들은 ‘삼불(三佛)’이라고 불렀습니다.
어느 날, 법연이 삼불(三佛)의 제자(弟子)와 밤길을 밝혀
산길을 내려오다 가랑잎이 솟구치는 바람에 그만 등불이 꺼져버렸습니다.
사방이 칠흑 같았고 발밑은 낭떠러지 였습니다.
큰 짐승이 있던 시절이라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요.
법연은 제자들의 수행(修行)도 가늠할 겸, 두려움도 떨칠 겸,
“자 이제 어떻게 하여야 하느냐?”라고 어둠 속에서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첫 번째로 불감혜근이 그들이 처한 상황과 느낌을
이르기를 “광란하듯 채색 바람이 춤을 추니 앞이 온통 붉사옵니다. (彩風舞丹宵, 채풍무단소)”라고 하였고,
이어 두 번째로 불안청원은 “쇠 뱀이 옛길을 가로질러 가는 듯하옵니다. (鐵蛇橫古路, 철사횡고로)”라고 하며
뜻 모를 말만 늘어놓았습니다.
그러자 마지막으로 불과원오의 말이 걸작(傑作)이었지요.
“우선은 불을 비추어 발밑을 봐야 할 것입니다.”
이른바 ‘조고각하(照顧脚下)’의 현답(賢答)을 추려내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처럼 ‘조고각하(照顧脚下)’는 각자 발밑을 조심히 살펴서 걸어가라는 말입니다.
이후 불과원오가 답했던 조고각하는 불가에서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살펴 수행에 정진해야 한다는 수행 규칙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조고각하는 또 빛을 돌이켜 거꾸로 비춘다'라는 뜻의
회광반조(廻光返照)와 비슷한 말입니다.
회광반조는 선종(禪宗)에서 자신의 내면세계를 돌이켜
반성하여 진실한 자신, 즉 불성(佛性)을 발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이 자기반성의 중요성을 가리키는 성어로는,
남을 탓하지 않고 잘못의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 고쳐나간다는 ‘반구저기(反求諸己)’,
남을 꾸짖기보다 자신을 돌이켜 보고 반성한다는 ‘내시반청(內視反聽)’,
문을 닫고 자신의 잘못을 생각하라는 ‘폐문사과(閉門思過)’,
하루에 세 번씩 자신의 몸가짐을 살피고 반성한다는
‘삼성오신(三省吾身)’,
성미가 급한 사람은 부드러운 가죽을,
성미가 느린 사람은 팽팽하게 활시위를 맨 활을 지니고 다니며
자신을 반성하고 수양한다는 ‘패위패현(佩韋佩弦)’이 있습니다.
한편 조고각하(照顧脚下)’를 ‘각하조고(脚下照顧)’라고도 합니다.
반대되는 뜻의 한자성어로는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도
남을 탓하는 데는 총명하다는 ‘지우책인명(至愚責人明)’이 있으며,
속담으로는 ‘잘되면 제 탓 못되면 조상 탓’이 있습니다.
어두운 밤길에는 한발 한발 조심조심 살펴 가며 걷는 것이 최선이지요
한 발 잘못 디디면 다치기에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항상 저 높은 이상을
향해 어떤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달려갑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내 발밑, 내 주변, 내가 처한 지금의 현실을 직시하고
“다시 한번 뒤돌아 생각해 보라”는 뜻이 ‘조고각하’의 깊은 뜻이 아닐는지요.
사람들 중에는 보람 있는 정직한 삶보다는 더럽고 냄새가 나더라도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삶을 희구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비리와 불법, 편법을 통해서라도 남보다는 더 좋은 집에서
우쭐대며 호기롭게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라고 여기는 부류들입니다.
권력을 누리고 재물을 탐하면서 생의 본분과 염치를 모르고 온갖 못된 짓을 하면서
겉으로는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고 정의와 공정을 부르짖으며
거짓과 위선 그리고 독선을 서슴지 않는 ‘내로남불’의 삶을 사는 군상들입니다.
조고각하에 담긴 깊은 뜻은 자신의 발밑을,
또 걸어온 발길을 돌아보며 삶을 통찰하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 전체를 살피고 돌아보라는 오묘한 뜻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문득 ‘서산대사(西山大師)’의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란
시구가 떠오릅니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눈 내린 들판을 걸어갈 제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발걸음을 함부로 어지러이 걷지 마소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취가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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