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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반사/感動.野談.說話

수월댁과 닥실댁

by 가마실 2022. 6. 24.

양반마님 닥실댁 ‘이웃’ 과부 수월댁 틈만나면 서로 깎아내리며 흉보는데...

 수월댁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닥실댁 바로 옆집에 살고 있다. 수월댁은 과부요, 닥실댁은 번듯한 양반 박진사의 안방마님이다. 수월댁과 닥실댁은 서른셋 동갑에 두집 모두 곳간이 넉넉해 살림 걱정을 안하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만나 입을 놀리는 게 일이다. 두사람의 장단이 딱딱 맞는 것은 남 흉보기다.

 “오 초시네 둘째딸이 보따리를 싸들고 친정으로 왔다지 뭐야 글쎄.”
 “벌써 몇번째야. 작년에도 한달이나 머물다 갔지.”
 “신랑이 첩을 정해서 온 게 아니고, 행실이 나빠 시어미한테 쫓겨났대.”

 이럴 때 수월댁과 닥실댁은 둘도 없는 이웃사촌이다. 그러나 남의 흉 빼고는 말속에 가시가 들었다. 은근히 상대방을 깎아내릴 때는 원수지간이다. 입놀림의 목적 자체가 상대방 오장육부를 뒤집는 것이다. 둘이서 잔칫집에 가는 길에,

 “수월댁, 비단치마 새로 사 입은 모양이네. 색깔이 저고리와 맞지 않아. 수월댁한테 어울리지 않는다.”

 닥실댁의 선공에 수월댁의 반격도 만만찮다.

 “맞아. 내게 어울리지 않아. 몇번 입다가 걸레로 하던가. 허구한 날 같은 옷 단벌부인인 바로 옆집 여자에게 그냥 줘버리던가.”

 둘 다 속이 부글부글 끓지만 밖으로 내색하지 않는다. 속으로는 ‘저년 망하는 꼴 언제 보지?’ 하면서도 표정은 미소를 짓는다. 동네 사람들도 두사람이 둘도 없이 친한 사이인 줄 알지 속으로는 원수지간이란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두사람은 그렇게 미워하면서도 하루도 안 만나면 좀이 쑤셔 못 견딘다. 두집을 가르는 담 사이엔 쪽문까지 달아뒀다. 어느날 닥실댁이 수월댁 부아를 돋우기 시작했다.

 “어제는 글쎄 마루에 앉아 봄볕을 쬐고 있는데 방물장수가 왔지 뭔가. 나한테 권하는 게 뭔고 하니 목신(木腎)이야, 목신.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었는지 최고조로 발기했을 때 나타나는 울퉁불퉁한 힘줄까지 양각을 해놓았지 뭐야. 호호호.”

 과부를 약올리려고 작심한 닥실댁이 얘기를 이어갔다.

 “그뿐 아니라 굴피로 만들어서 촉감까지 양물을 쏙 뺐어.”

 닥실댁이 힐금 수월댁 얼굴을 쳐다보자 양볼이 홍조를 띠었다.

 “그 굴피 목신을 글쎄, 마지막 공정으로 밀랍 녹인 냄비에 넣고 반나절을 끓였다나. 거무튀튀한 때깔하며 몸집 또한 우람하기 그지없지 뭔가.”

 닥실댁이 수월댁을 보며 생긋이 웃었다.

 “그런데 말이야, 목신을 아무리 잘 만든들 진짜만 하겠어. 나는 필요없다 했지. 옆집 과부한테 가 보라며 쪽문을 열어줬지. 수월댁도 그걸 봤어?”

 수월댁이 피식 코웃음을 쳤다.

 “보지도 않았어. 목신이 목신이겠지 뭐. 하려면 진짜로 하지 그깟 걸로 장난을 쳐?”

 닥실댁이 수월댁을 빤히 쳐다봤다.

 “진짜 있어?”

 수월댁은 대답도 하지 않고 딴청을 부렸다.

 “박 진사는 성능이 좋아?”

 “말도 마, 하룻밤도 그냥 재우지 않는다니까. 어휴 지긋지긋해. 우리 신랑 누가 좀 데려가지 않나.”

 수월댁이 닥실댁 오장육부를 뒤집을 참이다.

 “네 신랑 박 진사 어른, 대단하다. 너희는 한번도 불을 켜 놓고 하는 법은 없지?”

 닥실댁은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는 듯 대답했다.

 “매일 밤이 화촉신방이야.”

 “네 얼굴을 보고도 양물이 죽지 않고 빳빳하다면 대단한 남자다.”

 수월댁이 노골적으로 한방 먹였다. 사실 미모로 보면 과부 수월댁이 한수 위다. 울컥 치오르는 화를 억지로 참고 닥실댁이 배시시 웃었다.

 “우리 박 진사 눈에는 제 마누라가 양귀비래. 이날 이때껏 그 흔한 첩살림 한번 차린 적이 없다구.”

 수월댁 얼굴에 알 듯 모를 듯 살짝 미소가 스쳤다.

 “우리 신랑 저녁밥 지으러 갈란다. 쯧쯧 불쌍한 것, 기나긴 밤 독수공방 한숨에 방구들이 꺼질라.”

 닥실댁이 방을 나와 쪼르르 안마당을 돌아 쪽문을 열고 제집으로 갔다. 혼자서 식은 밥으로 저녁을 때우고 안방에 퍼질러 앉은 닥실댁은 한숨이 절로 난다. 수월댁 부아를 채우려고 하루도 빠짐없이 박 진사 품에 안긴다 했지만 진짜로 안겨본 지는 보름도 넘었다. 박 진사는 만날 바쁘다. 이경이 돼서야 술냄새를 풍기며 들어온 남편 박 진사가 사랑방에서 의관을 벗을 때, 머리에 동백기름을 바르고 남색 저고리 분홍치마를 차려입은 닥실댁이 식혜 한그릇을 받쳐 들고 사랑방으로 들어갔다.

 “부인, 아직 안 잤소?”
 “나으리 요즘 무척 바쁘신 것 같습니다.”

 바로 그때다.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관아의 사동이 고함을 질렀다.

 “사또 나으리께서 들라 하십니다~.”
 “또 무슨 일이….”

 박 진사는 투덜거리며 의관을 챙겨 황급히 나갔다. 색기를 풍기던 닥실댁은 안방으로 돌아가 훌러덩 옷을 벗어 휙 집어던졌다.

 “또 그놈의 사또.”

 대문 밖으로 나간 박 진사는 말없이 사동 조게주머니에 삼십전을 넣어줬다. 사동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박 진사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더니 옆집 대문 속으로 바람처럼 들어갔다.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73)수월댁과 닥실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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