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름발이가된 업이
안동에 사는 2대 독자 이초시는 딸이 여섯이다.
이초시는 술만 마시면 “절름발이라도 좋으니 아들 하나 얻었으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며 탄식하기 일쑤였다.
부인은 허구한 날 정화수 떠 놓고 삼신할미에게 빌고 절에 가서 백일기도를 올렸다.
지극정성에 하늘이 감동한 것일까.
부인의 배가 불러 오더니 달덩이 같은 아들을 낳았다.
이초시가 하도 ‘절름발이’ 소리를 읊은 게 겁이 나서 갓난아이 다리를 보니
사이에 고추를 달고 두 다리가 힘차게 버둥댔다.
3대 독자를 업이라 이름 짓고 금이야 옥이야 키웠다.
업이는 장마철 호박순처럼 쑥쑥 자라 서당에 가더니 글이 일취월장,
훈장님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다.
업이 열다섯이 되자 빨리 자손을 보려고 장가를 보냈다.
권진사네 둘째 딸과 혼인을 맺었다. 혼례식 날은 안동이 떠들썩했다.
신랑도 허여멀건 얼굴에 이목구비가 뚜렷했지만,
족두리 쓴 신부는 절세의 미인이라 모든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첫날밤, 후원 별당에 신방을
차리고 합환주를 마신 후 촛불을 끄자 신랑은 18살 신부의 옷고름을 풀었다.
신부의 속살은 비단처럼 매끄러웠다.
신랑은 황홀경에 빠져 잠 한숨 자지 않고
세 번이나 합궁을 했다. 신랑 신부는 원앙 한 쌍처럼 낮이나 밤이나
떨어질 줄 몰랐다.
새신랑 업이는 서당 가는 것도 잊어버렸다.
둘은 궁합이 맞아 신부도 이젠 죽은 듯이 몸을 맡기는 게 아니라
제법 엉덩이까지 돌리며 한낮의 합환도 예사였다.
이초시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자신이 못 이룬 과거에 급제하기를 바랐는데
여색에 빠져 헤어날 줄 모르는 것이다.
어느 날 이초시는 아들 업이를 불러 앉혀 놓고,
“너는 올가을에 과거를 봐야 한다.
사흘 후에 한양으로 올라가거라. 팔판동 외조부댁에 가서 공부에
전념하도록 해라.”
새신랑 업이는 별당으로 가 새 신부를 끌어안고 눈이 붓도록 울었다.
사흘 후 업이는 단봇짐을 싸 등에 지고서 하직
인사를 하고는 한양 길에 올랐다.
새 신부는 동구 밖까지 따라 나와 눈물을 훔쳤다.
그로부터 보름이 지나지 않아 몸종 삼월이가 경천동지할 얘기를
안방마님에게 귀띔했다.
안방마님 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사랑방으로 가
이초시에게 벌벌 떨면서 말했다.“
삼월이 말이 매일 밤 삼경에 검은 옷에 검은 복면을 한 작자가
담을 넘어와 별당으로 들어간답니다.”
그날 밤, 장맛비가 주르르 쏟아지는 삼경에 “으악” 하는
비명과 이초시의 몽둥이 찜 질 소리가 빗소리에 잠겼다.
검은 복면을 한 새신부의 샛서방은 담을 넘어오다 잠복한
이초시에게 초주검이 되도록 맞아 피투성이로 기절했다.
처마 밑으로 질질 끌고 와 복면을 벗기니 이초시의 아들 업이였다.
한양으로 올라가던 업이는 문경새재에서 발길을 돌려
안동으로 돌아와 학가산 아래 암자에 머물며 밤마다
복면을 하고 자기 집 담을 넘어 새색시에게 왔던 것이다.
업이는 이초시의 몽둥이에 오른쪽 무릎이 부러져
절름발이가 되어 평생을 살았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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