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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반사/感動.野談.說話

“암행어사 출두야!!~.”

by 가마실 2022. 8. 29.

인심 좋은 합수리 국밥집에 죽통 멘 거지 소년 찾아오는데...

 합수리 국밥집은 언제나 손님들로 넘쳐난다. 두개의 강이 서로 만나는 합수리는 뱃길이 닿는 포구요 육로가 동서남북으로 갈라지는 기점이라, 장사꾼들의 발길이 이곳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거기에 고을 현청까지 자리 잡아 언제나 장날처럼 떠들썩하다.

 한끼 요기를 해치우고 북풍한설에 언 몸을 데우는 데는 국밥만 한 게 없다. 사십줄에 접어든 맘씨 좋은 국밥집 주인과 항상 생글생글 웃는 그의 마누라는 정신없이 바빠도 짜증 한번 내는 법이 없다. 밥이 모자란다고 하면 한주걱 더 주고, 염치없는 손님이 국물 좀 달라면 그냥 한국자 퍼준다. 저녁 늦게 밥과 국이 남으면 그것은 다리 밑 거지 떼들 차지다.

 점심때가 지나면 국밥집 주인 내외도 한숨 돌릴 틈이 생긴다. 국밥 가마솥은 바깥 길가 쪽 처마 밑에 자리 잡아, 동지섣달 추울 때는 거지 애들이 국솥 주위에 진을 치고 앉아 언 손을 녹이고 아궁이에 장작도 넣어주는데, 그중에서 열두어살쯤 되는 한 아이는 다른 거지 애들과 달랐다.

 옷은 남루했지만 얼굴이 깨끗하고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밥통은 들고 있지 않고 항상 두자쯤 되는 죽통을 메고 다녔다. 국솥에 국이 많은 날, 맘씨 좋은 국밥집 주인 내외가 누룽지에 국을 한 국자씩 부어 거지 애들에게 나눠줘도 죽통소년은 받지 않고 자리를 떴다. 주인 내외는 가난하지만 자존심이 박힌 소년임을 알았다.

 눈이 펄펄 내리던 어느 날, 점심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죽통소년이 할머니를 부축해서 식당에 왔다. 그리고 눈치를 살피며 구석자리에 앉았다.

 “한그릇 시켜서 두사람이 먹으면 안될까요?”

 죽통소년이 어렵게 말하자 주인아저씨가 너털웃음을 날리곤 “안될 일이 뭐 있겠어”라며 들어가 소년과 할머니가 실컷 먹을 만큼 뚝배기가 넘치게 국을 퍼왔다.

 손님들이 꾸역꾸역 몰려들기 시작하자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난 할머니가 주인에게 국밥값을 내밀자, “손님 국밥값은 안 받습니다. 우리 집은 어느 날이나 백번째 손님에게는 국밥값을 안 받아요.”

 할머니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머뭇거리다가 국밥집을 나갔다. 할머니도 옷은 기워 입었지만 깨끗하게 늙었다. 그날 이후 국밥집 주인은 죽통소년을 볼 수 없었다.

 8년의 세월이 흘러 꽃피고 화창한 봄날이 찾아왔다. 합수리 강가의 조그만 매운탕집에 갓은 찌그러지고 두루마기에는 땟물이 흐르는 한 젊은이가 들어섰다. 손님이 아무도 없어 주인 내외가 흐르는 강물만 바라보고 있다가 “어서 오십시오” 하고는 젊은이 얼굴을 자세히 보더니 “이게 누군가! 그때 죽통을 메고 다니던….”

 “맞습니다. 국밥집을 찾았더니 여기를 가르쳐 주더군요. 어쩌다가 그 잘되던 국밥집을 그만두고 이리로?”

 길게 한숨을 쉰 주인이 7년 전 얘기를 털어놨다. 하루는 장사를 마치고 문을 닫으려는데 거간꾼 영감이 들어오더니 국밥집을 넘기라는 것이다.

 “우리 어머니가 맨손으로 일궈 놓은 이 터전은 억만금을 줘도 안 팝니다.”

 거간꾼이 말없이 나가더니 이튿날부터 저잣거리 왈패들이 들어와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마시다 남은 탁배기를 손님들에게 홱 뿌리며 술에 물을 탔다느니, 돌을 씹어서 이빨이 흔들거린다느니 고래고래 소리쳤다. 다음 날은 국밥을 먹고 배탈이 났다며 바가지로 설사 똥을 뿌려 국밥집이 아수라장이 됐다.

 관가에 고발해도 포졸들이 왈패들 편을 들었다. 알고 보니 강가에서 매운탕집을 하던 작자가 이 고을 사또 부인의 육촌 오빠였다. 결국 국밥집을 시세의 반의반도 되지 않는 돈에 빼앗기다시피 넘기곤 그 작자가 하던 매운탕집을 떠맡았다.

 국밥집, 아니 매운탕집 주인 내외는 자신들도 망해서 이 꼴이 됐지만 눈망울이 빛나던 그 소년도 어찌 인생이 안 풀려 이 몰골로 찾아왔느냐며 연민의 눈빛을 보냈다.

 “할머니는?”
 “3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한참 침묵이 흐른 후,

 “그때 자네가 메고 다니던 죽통 속엔 무엇이 들어 있었고 합수리엔 어떻게 살게 됐는가?”
 “사화에 휩쓸려 아버지는 귀양을 갔고 어머니는 목매달았지요. 할머니는 저를 데리고 한양 도성을 탈출해 흘러흘러 이곳으로 왔어요. 먹고살 길이 없으니 할머니가 화선지에 친 사군자를 제가 죽통에 넣어 저잣거리 화상에 가서 몇푼 받고 팔았지요.”

 젊은이는 매운탕 한그릇 먹고 가라는 청을 뿌리치고 지저분한 두루마기 자락을 날리며 자리를 나섰다. 그는 그 길로 성큼성큼 걸어가 합수리 저잣거리에 있는 현청 앞에서 산천초목이 떨도록 고함을 질렀다.

“암행어사 출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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