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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반사/感動.野談.說話

새우젓 도매상

by 가마실 2023. 2. 21.

새우젓 도매상 하던 유 대인
노다지 캐려 땅굴 파는데…
 



전북 부안 곰소에서 새우젓 도매상을 하는 유 대인은 이제 걱정 없이 산다.
열여섯살, 뼈가 영글지도 않았을 때부터 그 무거운 새우젓 통을 메고 이 산골 저 산골을 다녔다.
주막에선 방값이 아까워 굴뚝 옆에 거적때기를 덮고 자고 장작을 패주고 식은 밥을 얻어먹으며
끼니를 때웠다. 밤이면 언제나 벌어지는 장돌뱅이의 술판에도 끼지 않고 한평생 왕구두쇠 소리를
들으며 아끼고 아껴 마흔이 되자 곰소에서 새우젓 도매상을 차렸다.
부창부수(夫唱婦隨·남편이 주장하고 아내가 잘 따름).
억척같은 마누라는 도매상에서 치부를 보며 일전 한푼 나가는 걸 벌벌 떨었다.

새우젓 장수에게 외상을 주면 별의별 일이 다 생긴다.

노름판에 새우젓은 물론 지게까지 잡혀서 날리고 빈 몸으로 오는 놈,
꼴에 첩을 얻어 허구한 날 싸움질에 몇날 며칠 장사도 안 나가는 놈,
새우젓을 다 팔고도 외상을 갚지 않는 놈…. 장사는 원래 그런 거라며 유 대인 부부는
곰소에서 부자 행세하며 3남1녀와 유복하게 살았다.

추석이 지난 어느 날 고향을 다녀온 새우젓 장수 가운데 나이 지긋한 허 생원이 누리끼리한

돌멩이 하나를 들고 왔다. 주먹만 한 돌멩이 사이에 누런 띠가 박혀 있는 것이다.
고향 전남 구례에 가서 선산에 올랐는데 누런 돌멩이가 발에 채어 들고 왔단다.
유 대인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말로만 듣던 노다지! 유 대인은 노다지를 들고 저잣거리 금은방으로 달려갔다.
노 첨지가 긁어보고 불에 녹여보더니 노다지가 맞다는 것이다.

허 생원이 허튼사람이었다면 의심을 한번쯤 해봤을 터인데 과묵하고 워낙 정직한 사람이라

유 대인은 손톱만큼도 의심치 않았다.
이튿날 새벽 허 생원, 유 대인과 금은방 노 첨지가 구례로 향했다.

달밤에도 걸어 3일 만에 구례에 닿아 곧바로 허 생원네 선산으로 가 땅을 팠다.
한자쯤 팠을 때 또 다른 더 큰 노다지가 나왔다.

“그만, 그만”

유 대인이 흙을 덮었다.

누가 볼세라 주위를 둘러보고 세 사람은 구례로 가서 주막집 구석방으로 들어갔다.
셋이서 합작으로 금 광산을 창업하기로 의견을 모으는데 허 생원은 발뺌했다.
유 대인과 노 첨지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유 대인과 노 첨지가 빚을 내 거금을 주고 허 생원네 선산을 샀다.

노다지를 쌓아둘 창고를 거창하게 짓고 일꾼들을 모아 굴을 파기 시작했다.
노다지는 두 덩어리, 그걸로 끝이었다. 금은방 노 첨지가 떨어져나가고 유 대인이 모두 떠안았다.

새우젓 도매상은 진작에 남의 손에 넘어가고 열자·스무자·서른자, 동굴을 팠지만

노다지는 나오지 않고 문전옥답만 팔려나갔다.
동굴을 백자나 파들어갔을 때 곰소의 기와집도 날아가 식구들이 텅 빈
노다지 창고 속에 들어와 밤이슬을 피했다.

거지 신세가 됐다. 허 생원은 진작에 거금을 싸들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허 생원 집 헛간에 노다지를 만든 흔적만 남았다.
설상가상, 스물두살 맏아들이 만삭의 주막집 딸을 데리고 왔다. 한달 뒤에 딸을 낳았다.

유 대인은 새우젓 장수를 찾아다니며 외상값을 받아 식구들 입에 풀칠하고

며느리는 주막 친정에서 쌀자루를 이고 왔다. 손녀딸 재롱에 가끔 웃음꽃이 피었다.

어느 해 가을, 친정 갔던 며느리가 곡식자루를 얹은 당나귀 한마리를 데리고 왔다.

장기투숙자가 돈이 없어 타고 온 당나귀를 주막에 떠넘긴 것이다.
맏아들은 구례읍내에 나가 목공소 제재소에서 가마니에 톱밥을 담아 당나귀 등에 싣고 와
동굴 속에 차곡차곡 넣었다.

그해 겨울, 동굴 앞에 흐르는 개울이 깡깡 얼자 부자가 톱으로 얼음을 썰었다.

두께 한자, 폭도 한자, 길이는 두자가 되도록 얼음덩이를 썰어 동굴 속 톱밥에 묻었다.
동굴에 문을 달았다.

기나긴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지난겨울이 춥더니 무더위가 일찍 와 하지 전부터 푹푹 찌기 시작했다.

얼음 덩어리를 톱밥에 싸서 맏아들 처가인 주막에 보냈다.
얼음이 둥둥 뜬 막걸리를 마시러 사또도 매일 왔다. 잔칫집에서는 동굴을 찾아와 얼음을 사갔다.
노다지는 나오지 않았지만 얼음이 노다지가 됐다.

3년째 되는 봄 뚝딱뚝딱 서른여섯칸 기와집이 동굴 앞에 우뚝 섰다.

며느리 음식 솜씨가 보통이 아니어서 삼복 때는 시원한 동굴 속에 점심상을 차렸다.
촛불을 밝히고 부자들이 와서 비싼 밥값을 내고 서늘한 동굴 속에서 떨면서 식사를 했다.
처서 때까지 예약이 꽉 찼다. 웃음소리가 끊일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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