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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반사/感動.野談.說話

어수룩한 촌사람

by 가마실 2023. 4. 12.

서울 종로에서 가장 큰 원앙포목점의 곽첨지는 악덕 상인이다.
촌사람이 오면 물건값을 속이고 바가지를 왕창 씌운다.
조강지처를 쫓아낸 후 첩을 둘이나 두고 화류계 출신 첫째 첩에겐 기생집을 차려줬고,
둘째 첩에게 돈놀이를 시켰다.

 

 




어느 날,
어수룩한 촌사람이 머슴을 데리고 포목점에 들어왔다.
곽첨지는 육감적으로 봉 하나가 걸려들었다고 쾌재를 부르며 친절하게 손님을 맞았다.
촌사람은 맏딸 시집 보낼 혼숫감이라며 옷감과 이불감을 산더미처럼 골랐다.

곽첨지는 흘끔 촌사람을 보며 목록을 쓰고 추판알을 튕겨 나갔다.

"전부 430냥입니다.
이문은 하나도 안 남겼습니다요."


"끝다리는 떼버립시다.
내후년에 둘째 치울 때는 에누리 한푼 안 하리다."


"이렇게 팔면 밑지는 장산데....."


곽첨지는 짐짓 인상을 쓰면서 400냥에 합의를 봤다.
포목점 시동들이 보따리를 꾸리는데 촌사람 왈


"돈을 제법 가지고 나왔는데 패물 장만하느라 다 써버렸으니 조그만 기다리시오."


하고는 데리고 온 머슴에게


"만석아,
얼른 집에가서 집사람에게 400냥만 받아 오너라."


명했다.
그러자 총각 머슴은


"나으리,
그래도 한두자 적어 주시지오."


라며 머리를 긁적였다.
촌사람은 혀를 찼다.


"네놈이 집사람에게 신용을 단단히 잃은 모양이구나."


그 모양새에 눈치 빠른 곽첨지는


"확실하게 하는 게 좋지요."


라며 지필묵을 꺼내왔다.
촌사람이 소매를 걷자 오른손에는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끓는 물에 손을 데서....."


그가 붕대 감은 손으로 붓을 잡으려 애쓰자 곽첨지가


"제가 받아 적을 테니 말씀난 하시라"


며 얼른 붓을 받아 들었다.
촌사람은 헛기침 후 문구를 불렀다.


"임자,
이 사람 편에 400냥만 얼른 보내시오."


곽첨지가 쓴 편지를 받아든 머슴이 휑하니 포목점을 나갔다.
곽첨지는 자기가 점심을 사겠다며 촌사람의 소매를 잡아 끌었다.
두사람은 포목점 뒤 순라 골목 주막에 가서 막걸리를 곁들여 푸짐하게 점심을 먹었다.


한데 화장실에 간 촌사람은 오지 않았고,
지겹게 기다리던 곽첨지가 화장실을 뒤져봐도 촌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포목점으로 돌아가 봐도 촌사람은 없고 돈 가지러 간 머슴도 오지 않았고
혼수 보따리만 덩그렇게 남아 있었다.
그때까지도 곽첨지는 안심했다.


"촌놈 여편네가 당장 400냥을 무슨 수로 구하겠어.
내일 오겠지..."


그날 저녁,
첫째 첩에게 간 곽첨지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는다.


"아니 영감,
점심 나절에 갑자기 400냥은 뭣에 쓰려고......"


깜짝 놀란 곽첨지는 대답도 안하고 돌아나와 돈놀이하는 둘째 첩에게 달려갔다.


"영감 필적으로 그 사람 편에 400냥을 보내라고 했잖아요."

60) 어수룩한 촌사람〔조주청의 사랑방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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