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로등/자유공간

중산층으로 가는 사다리 걷어차나

by 가마실 2021. 3. 27.

중산층으로 가는 사다리 걷어차나

“대상자가 서울 강남 1%”라더니 전국 곳곳에서 보유세 부담 급증 국민이 감당할 수 있는 정책 펴야

부동산 정책 실패가 점입가경이다.

4년 전 문재인 정권이 “반드시 집값을 잡겠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은 손뼉을 쳤다.

하지만 지나치면 탈이 나는 법이다. 시장 원리를 외면한 정책이 꼬리를 물면서다.

주택 소유자는 세금 부담에 허리가 휘고, 무주택자는 내 집 마련의 꿈을 잃게 됐다.

부동산 정책 실패로 ‘벼락 거지’가 쏟아지는 와중에 “부동산 투기로 돈을 못 벌게 하겠다”

다짐한 문 대통령의 딸은 빌라를 사고팔아 1년9개월 만에 1억4000만원을 벌었다.

처남은 10여 년 전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땅을 팔아 47억원을 벌어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시민단체의 폭로로 촉발된 LH 사태는 국민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현 정권 고위직들의 은밀한 투자와 다주택 보유가 줄을 잇는 가운데

LH 직원들은 보상용 나무까지 심어가며 땅 사재기에 열을 올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설상가상으로 정부는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지난해보다 19.08% 올렸다.

1주택자와 지방 주택에도 영향이 본격적으로 미치는데도 정부는 “당초 계획에 따라

현실화율 (시세 대비 공시가격 비율) 기준을 적용했다”는 기계적 설명만 했다.

급격한 보유세 폭등이 민생에 어떤 충격을 주는지에 대해선 알 바 아니라는 자세다.

문제는 1주택자 부담이 너무 커졌다는 점이다.

공시가격이 지난해 9억6000만원 (시세 13억7000만원)에서

올해 12억원(시세 17억1000만원)으로 뛴 아파트를 보자.

보유세는 302만3000원에서 432만5000원으로 43.1% 오른다.

반발이 쇄도하자 정부는 공시가격 6억원 이하는 세율을 낮춰서

재산세 부담이 지난해보다 줄어든다고 둘러댄다.

하지만 감면은 3년간 한시적이다.

더구나 세 부담이 본격적으로 늘어나는 6억원 초과 공동주택 비율은 7.9%에 이른다.

당초 “세 부담이 늘어나는 대상자는 전체 주택 보유자의 1%에 불과하다”는 현 정권의 설명은 오간 데 없다.

처음부터 경제 논리는 없고 1 대 99 프레임의 갈라치기 진영 논리였다.

국민 고통은 커지고 있다. 세 부담 급증 지역이 강남 3구를 넘어 서울 전역으로 퍼지고,

세종·대전·부산·울산·충북 등 지방에서도 ‘벼락 세금’을 맞는 주택 보유자가 급증하고 있다.

집값이 몇억원씩 올랐으니 별것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미실현 이익에 대해 급격하게 세금을 부과하면 가계는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다.

감당하기 어려우면 집 팔고 이사 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난폭하게 경제를 운영하는 나라는 없다.

심지어 사회주의 체제인 중국에서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주택은 거주 공간이면서도 중산층으로 가는 사다리이기 때문이다.

경제는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생태계에서 움직인다.

1%에 변화가 생기면 그 효과는 99% 전체로 파급된다.

특히 세금의 파급력은 크다. 왜 세금을 호환마마보다 무섭다고 하나.

일단 부과되면 공권력이라서 누구도 피할 수 없다. 그만큼 신중해야 할 텐데

현 정권은 민생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공시가격의 현실화율을

현재 70%에서 2030년 90%까지 올리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25차례의 부동산 대책이 보여주듯 권력의 힘으로 시장의 질서를 만들겠다는 자세다.

시장 반응에는 귀를 닫고 마이웨이 중이다.

문 대통령은 정책 수정에 대한 언급 없이 “부동산 적폐 청산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기조는 재정 형편 때문에라도 바뀌기 어려워 보인다.

급격한 재정 지출 탓에 바닥을 드러낸 나라 곳간을 메우기 위해서라도 그렇다.

하지만 서민과 중산층의 고통은 어떻게 할 건가.

공시가격 급등 여파로 1주택자도 세금이 뛰고, 은퇴자는 건강보험 내느라 허리띠를 졸라맨다.

무주택자는 전·월세가 뛰어 힘들고 내 집 마련의 꿈도 접게 됐다.

국민이 감당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정해야 한다.

그게 점입가경이 된 부동산 혼란의 탈출구다.

글 / 중앙일보 칼럼 / 김동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