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마 밑에 낯익은 여자 신발
고 서방은 또 땅이 꺼져라 한숨을 토했다.
저녁나절 장에 갔다가 사립문을 열고 집에 들어오니 처마 밑에 낯익은 여자 신발이 놓여 있는 것이다.
장모님 신발이다.
또 장인어른과 싸우고선 딸네 집에 온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 “장모님 오셨어요.”
인사를 하자 장모는 “고 서방, 눈치 없이 또 왔네….”라며 겸연쩍은 얼굴로 대답했다.
예전 같으면 “아닙니다. 장모님 제 눈치를 보시다니요.” 하면서 환하게 웃었겠지만 이제는 아니다.
한두번이어야 말이지. 일년에 서너차례 보따리를 싸서 딸집으로 오니 고 서방 내외는 미칠 지경이다.
고 서방은 무뚝뚝하게 말 한마디를 건네고 장모님이 거처할 건넌방에 군불을 지피러 나갔다.
군불을 한참 지피고 있는데 안방에서 모녀간에 뭔가 토닥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곧 장모님이 안방 문을 열고 나왔다.
“엄마 어디가?” 라며 고 서방 마누라가 따라 나오자
장모는 “내 걱정하지 마라.” 잡은 손을 뿌리쳤다.
모녀가 말다툼을 하는 것은 뻔할 뻔자다.
장모님은 장인어른과 싸운 연유를 설명하며 욕을 퍼붓고
고 서방 마누라는 그 정도도 참지 못하는 제 어미를 탓하자 장모님이 발끈 일어선 것이다.
군불 때던 고 서방이 일어나 장모를 뒤에서 잡아 건넌방으로 집어넣었다.
그날, 고 서방은 장에서 맷방석 열다섯개를 다 팔아치우고 술 한잔 걸치고 집에 왔다.
저녁 수저를 놓고 나면 마누라 치마를 벗기고 요란스럽게 일을 한번 치러야 하는데 숨소리까지
다 들리는 건넌방에 장모가 있으니 난감하고 화가 치민다.
에라 모르겠다. 고 서방이 마누라를 껴안자
마누라는 말은 못하고 고 서방 가슴팍을 떼밀었다.
속치마를 올리고 고쟁이를 내리려하자 마누라가 고 서방 손등을 꼬집으며 몸을 오므렸다.
이불을 덮어쓰고 손으로 입을 막았지만 마누라는 워낙 감창이 큰 체질이라 별 소용이 없었다.
될 대로 되라며 방구들이 내려앉을 듯 합환을 했다.
고 서방이 정신을 차리고 요강을 찾아 살며시 방문을 열고 나가자 건넌방에서 앓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고 서방 오줌발 소리에 건넌방이 조용해졌다.
이튿날, 장모는 문을 걸어 잠그고 아침도 안 먹겠다고 했다. 그렇게 닷새가 지났다.
이십리 밖에서 장인이 찾아왔다.
장모는 죽어도 안 가겠다고 앙탈을 부렸다. 장인은 “여보~, 이제 그만 우리 집으로 갑시다.”
잠긴 문 밖에서 몇번을 부르다가 돌아갔다.
한번 찾아오고, 두번, 세번을 찾아와야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서는 장모의 버릇을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이틀 후에 장인이 또 찾아왔다.
고 서방이 맷방석을 짜다 말고 장인의 팔짱을 끼고 동구 밖 주막으로 갔다.
술이 얼큰히 오르자 “장인어른, 이제 찾아오지 마십시오.
한 열흘 못 참으세요?” 고 서방이 몰아붙이자 술잔만 들이켜던 장인이 천장을 바라보며
“나도 남자네, 요즘은 겨울이고.” 하기야 농부들에게 봄·여름·가을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저녁 수저만 놓으면 쓰러져 코를 고는 계절이다.
그러다 할 일 없는 겨울이면 농번기에 못한 것을 벌충이라도 하듯, 마누라 치마를 벗기는 법이다.
“장인어른, 남자만 겨울이 좋은 줄 아세요? 여자도 마찬가지예요.”
장인은 주막에서 나와 제집으로 갔다. 이틀 후, 저녁상을 치우고 나자
“장모님, 올해는 맷방석이 잘 팔려 가을에 땔감 준비를 충분히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저희 안방에서 함께 주무시지요.”
고 서방이 치마 두개를 꺼내 끈으로 연결한 다음, 양쪽 끝을 이벽 저벽에 묶으니 칸막이가 되었다.
아랫목은 장모님 자리, 윗목은 고 서방 내외가 차지했다.
호롱불을 끄자마자 고 서방 내외는 부스럭부스럭 옷을 벗었다.
곧이어 쪽쪽 소리가 나더니 황소가 뻘 밭을 지나가는 소리, 암고양이 울음소리, 당나귀 짐 싣고
고개 오르는 소리가 방을 가득 채우는 게 아닌가.
이튿날, 날이 새자마자 장모는 딸 내외의 얼굴도 안 본 채 제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 장인은 사위 고 서방이 귀띔해준 대로 장모를 본체만체 잠을 잤다.
장모가 장인에게 잘못했다며 항복한 건 삼일 후였다.
장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장모의 치마끈을 풀었다.
아침에 장인은 코피가 터졌다.
장모는 두번 다시 보따리를 싸서 딸네 집에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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