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법연구회'는 단순히 법을 연구하는 조직인가?
판결마다 성향 부각되는 좌파 법관 사조직
2020년 12월 23일, 조국 아내 정경심의 1심 선고가 있었다. 재판부는 입시 비리를 유죄로 인정했고, 5촌 조카에게 미공개 정보를 얻어 차명으로 거래한 혐의도 유죄로 인정했다. 증거 은닉 교사는 자산 관리인과 정경심 본인이 같이 저지른 것이라 무죄, 최종 결론은 징역 4년이었다.
이 판결이 중요했던 것은 여기에 문재인 정권의 도덕성이 걸려 있기 때문이었다. 문 정권은 최측근인 조국 가족을 수사한다는 이유로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을 비롯한 수사팀에 엄청난 외압을 가했고, 좌파는 서초동에 모여 ‘조국 수호 집회’라는 반동적 시위를 벌였다. 문 정권의 실세인 유시민은 “지금 검찰은 대통령보다 센 권력기관”이라며 “민주공화국 시민으로서 검찰의 행태를 묵과할 수 없다”는 협박을 하기까지 했다. 사정이 이런데 1심에서 정경심에게 무죄가 선고됐다면, 혹은 벌금형 정도에 그쳤다면 윤석열 수사팀은 검사복을 벗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씨에게 징역 4년이 선고되면서 윤 총장은 단숨에 대선 후보로 부상했고, 결국 정권 교체를 이뤄낸다.
1심 판사 세 명이 정치판 운명을 결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판사의 판결이 이렇게 중요하기에 정상적 국가에서는 사법부의 독립을 보장하고, 판결에 따른 불이익을 받지 않게 해준다. 우리나라도 헌법 제103조에서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재판한다’고 규정해 놓았고 여타 공무원과 달리 징계 처분으로도 파면·해임되지 않도록 신분을 보장해 주고 있다.
정경심 판결 당시 혹시 무죄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래도 그때 나는 사법부가 제대로 판결해 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가장 존경받는 직업군인 판사가 자기 이념이나 친분에 따라 판결을 달리한다면 대한민국이 이만큼 성장하지 못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 뒤 여러 재판을 관심 깊게 지켜보는 과정에서, 판사가 정말 자기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판결하는지 회의를 갖기 시작했다. 특히 사법부 내에 ‘우리법연구회’라는 사조직이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원래 판사는 외로운 직업인이어야 한다. 판사 한 명 한 명이 다 독립적 사법기관인 데다, 판사가 다른 이들과 어울리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청탁이나 압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좌파적 성향을 지닌 법관들끼리 어울리는 사조직이 있다면, 그리고 주요 재판이 그들 사이에서 배당된다면 재판이 공정하게 이루어진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실제로 우리법연구회 판사들은 각종 판결에서 이념성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예컨대 노정희 대법관은 현대차 불법 파업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금속노조 조합원 4명이 20억원을 배상하라”는 원심을 깨고 조합원 손을 들어줬다. 파업에 참여한 정도가 각각 다르니 배상도 다르게 해야 한다는 건데, 이 판결대로라면 기업은 노조가 불법 파업을 해도 손해배상을 받기가 어려워지고, 민주당이 통과시키려는 노란봉투법이 굳이 필요 없어진다.
2020년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허위 사실 공표 재판에서 대법원이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의 파기환송을 이끌어 낸 데도 대법원장 김명수와 노정희, 이 두 우리법연구회 법관이 무죄 의견을 낸 것이 결정적이었다. 더 황당한 점은 당시 이재명 변호를 맡은 LKB가 우리법연구회 회장을 지낸 이광범이 만든 로펌이며, 조국과 김경수 등 문재인 정권 실세들의 변호를 독점했다는 사실이다. 그 뒤 노정희는 선관위원장으로 뽑혀서 대선에서 ‘소쿠리 투표’ 논란을 일으키는 등 그 나름의 활약을 했고, 이광범도 결국 탈락하긴 했지만 유력한 초대 공수처장 후보로 물망에 오른 걸 보면, 우리법연구회를 단순히 법을 연구하는 조직이라고 보긴 어려울 것 같다.
이번 계엄 정국에서도 우리법연구회는 관심의 초점이 됐다. 내란 수사 권한도 없는 공수처가 윤 대통령을 조사하겠다며 체포 영장을 청구하는 과정에서, 재판 관할 기관인 서울 중앙지법 대신 서부지법을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공수처는 윤 대통령이 머무는 서울 한남동 관저의 주소를 고려했다고 둘러댔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던 모양이다. 서부지법 영장 전담 판사인 이순형이 우리법연구회 소속이었던 것. 공수처의 기대대로 이 판사는 영장을 발부해 줬고, 책임자의 승인 없이는 군사상·공무상 비밀을 요구하는 장소의 압수 수색을 못하게 하는 형사소송법 110조·111조 적용을 예외로 해주는 특별 서비스까지 넣어줬다.
1차 체포 영장의 유효기간이 지나자 공수처는 또다시 서부지법에 영장을 청구한다. 공수처의 ‘좌파 판사 쇼핑’이 문제가 됐고, 윤 대통령이 “중앙지법에서 영장을 발부한다면 수사에 응하겠다”고 밝혔으니 중앙지법을 택할 만도 하지만, 공수처의 선택은 이번에도 서부지법이었다. 그리고 서부지법의 또 다른 판사는 공수처의 요구에 성실히 응했다.
희한한 점은 또 있다. 민주당은 그간 공석으로 놔두던 야당 몫 헌법재판관 두 명의 추천권을 행사했는데, 우리법연구회 출신에 정치 편향성 논란까지 불거진 마은혁 판사는 서부지법에서 근무 중이고, 윤 대통령이 “공정한 심판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기피 신청을 낸 정계선 재판관은 우리법연구회 출신으로 서부지법원장을 지낸 바 있다. 서울만 해도 중앙지법, 동부지법, 서부지법, 남부지법, 북부지법 이렇게 다섯 법원이 있는데, 유독 서부지법만 이렇게 화제가 되는 건 정말 신기하지 않은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이 중심이 돼서 만든 육군 내 비밀 결사 조직 하나회가 문제가 된 것은 자기들만의 빠른 진급, 노골적 인사 특혜, 비리 감싸주기 등의 폐해를 초래했고, 결국 군사 반란까지 일으키는 단초가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중요성에서 군대보다 떨어지지 않는 사법부에 비슷한 사조직이 있다면, 그건 괜찮은 것일까? 특히 예민하기 짝이 없는 정치인 재판에 이념이 작용한다면, 그 결과에 승복할 수 있을까? 최근 들어 사법부 불신이 날로 깊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물론 우리 정치판이 극단으로 치닫는 점이겠지만, 우리법연구회의 존재도 그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 구성원들은 그런 문제의식이 없는 모양이다. 대법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자신의 성향을 유감없이 드러냈음에도 작년 8월 아무 탈 없이 퇴임한 노정희 대법관은 퇴임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법원의 판결에 대해 합리적인 비판 대신 즉흥적이고 거친 언사로 비난하는 일 등이 잦아지고 있는데 이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사법부 독립의 뿌리를 갉아먹고 자칫 사법부 구성원들의 사명감과 용기를 꺾을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글 / 조선일보 칼럼 /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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