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뿔도 모르면서 ...
서 서방이 동구 밖 주막에서 친구들과 술 한잔을 걸치고 집으로 돌아와 안방 문을 열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영문인가.
발가벗은 마누라가 밑에 깔렸고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간부(姦夫)가 그 위에서 가쁜 숨을 쉬고 있는 게 아닌가.
서 서방은 다듬잇방망이를 치켜들고 고함쳤다. “웬 놈이냐!” 하지만 연놈들이 도리어 성을 냈다.
“밤중에 남의 집 안방에 쳐들어온 네놈이야말로 날강도가 아니냐!”
때아닌 소동에 온 식구들이 깨어나 안방으로 몰려들었다.
이럴 수가! 서 서방은 벌린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마누라와 방사를 치르던 간부란 놈이 거울을 보듯 자신과 똑 닮은 것이 아닌가! 귀밑의 점,
왼 종아리의 상처 자국까지 똑같았다.
놀란 마누라와 식구들은 두사람을 번갈아 보며 비명을 토했다.
서 서방의 늙은 아버지가 나섰다. “내 이름이 뭐냐?” “서봉섭.” 두사람은 동시에 대답했다.
“우리 논밭이 얼마나 되느냐?” “논이 열두마지기, 밭이 일곱마지기.” 이번에도 두사람은 동시에 정확하게 답했다.
지켜보던 서 서방 마누라가 물었다. “우리 집 수저가 몇벌이나 되지요?” 간부가 선뜻 대답했다. “놋수저가 열일곱벌이요, 은수저가 두벌.” 서 서방이 깜짝 놀라 덩달아 말했다. “놋수저 열일곱, 은수저 두벌.” 간부놈이 피식 웃으며 받아쳤다. “지난봄 아버지 생신잔치 하느라 놋수저 한벌을 잃어버려 지금은 열여섯벌입니다.”
“저놈이 가짜다!” 온 식구들이 달려들어 진짜 서 서방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당장 목숨이 위태로워 서 서방은 도망치듯 집을 빠져나왔다.
풍찬노숙하던 서 서방이 어느 날 소나무 가지에 새끼줄을 묶어 목을 매려는데
어디선가 지팡이가 날아와 뒤통수를 때렸다.
나동그라진 서 서방을 내려다보며 노스님이 대성일갈했다.
“못난 것 같으니라고! 젊은 놈이….”
그 길로 스님을 따라 소백산 깊은 암자에 들어간 서 서방은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스님이 물었다. “혹시 집 안에 짐승을 키우는가?” “개도 안 키우고 닭 한마리 키우지 않습니다.”
스님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시 물었다. “잘 생각해 보게.” 한참을 생각하던 서 서방이 입을 열었다.
“참, 생쥐 한마리를 키운 적이 있습니다.
골방에서 새끼를 꼬고 있는데 조그만 생쥐 한마리가 흙벽 구멍에서 나오길래 먹이를 줬더니
제가 그 방에 들어가기만 하면 슬슬 기어 나왔지요.” 서 서방이 말을 이어갔다.
“어느 날 벽에 기대 깜박 잠이 들었는데 종아리가 따끔거려 눈을 떴더니 생쥐가 달라붙어 피를 빨고 있었지요.
그 배은망덕한 놈을 잡으려 했더니 팔짝 뛰어 쥐구멍으로 사라진 후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며칠 후 스님이 싸준 보따리를 들고 서 서방은 소백산을 내려왔다.
사립문을 열고 집 마당에 들어서자 마루에서 저녁을 먹던 식구들이 놀라서 흠칫하는데
가짜 서 서방은 삿대질을 하며 벼락 같은 고함을 질렀다.
“저놈 잡아라!”
그때 서 서방이 들고 온 보따리를 풀자 고양이 한마리가 뛰쳐나와 쏜살같이 가짜 서 서방에게 달려들었다.
“찍찍.” 가짜 서 서방은 갑자기 생쥐로 변해 도망쳤지만 열걸음도 못 가 고양이 발톱에 낚아채였다.
온 식구들이 서 서방을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는데 마누라는 치마를 덮어쓰고 울기만 한다.
마누라를 쫓아내진 않았지만 한평생 마누라는 쥐 죽은 듯 지냈다.
마누라가 나서기라도 하면 서 서방은 한마디로 잠재웠다. “쥐뿔도 모르면서.” 뿔은 곧 양물이다.
마누라의 옥문으로 쥐의 양물이 그토록 여러번 드나들었는데도 제 서방의 양물과 구분도 못 했느냐는 질책이었다
'☞다반사 > 感動.野談.說話' 카테고리의 다른 글
흰 조개가 웃고있네 (0) | 2022.01.26 |
---|---|
하룻밤 다섯횡재 (0) | 2022.01.22 |
함흥차사(咸興差使) (0) | 2022.01.22 |
제갈 공명과 부인의 이야기 (0) | 2021.10.07 |
며느리 (0) | 2021.10.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