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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반사/感動.野談.說話

하룻밤 다섯횡재

by 가마실 2022. 1. 22.

하룻밤 다섯횡재

 

장맛비 퍼붓는 밤 오생원, 어머님 묘 간다며 길 나서 도착한 곳은 골목 끝 허서방네 집.

상복을 마루에 벗어놓고 안방으로 들어갔는데…

장맛비가 퍼붓는 칠흑 같은 밤, 오 생원은 상복을 입은 채 도롱이를 걸치고 삽자루를 들었다.

부인에게는 어머님 산소에 가 본다며 집을 나섰다.

그런데 오 생원이 간 곳은 한달 전에 묻은 제 어미 묘가 아니라 골목 끝 허 서방네 집이다.

갓장수 허 서방이 이 고을 저 고을 외장을 도느라 열흘씩 보름씩 집을 비울 때면

허 서방 마누라는 샛서방인 오 생원을 안방으로 들이는 것이다.

오 생원은 도롱이를 벗어 놓고 안방문을 열려다가 저승의 제 어미가 내려다보는 것 같아

벗어 마루에 걸쳐 놓고 벌거벗은 몸으로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갔다.

시차를 두고 또 한사람이 허 서방네 사립문을 열고 들어왔다. 채장수 엄 서방이다.

갓장수 허 서방과 채장수 엄 서방은 외장에서 만나 친구가 된 사이로 잠자리가 마땅찮을 땐 상대방 집에서 신세를 진다. 엄 서방이 처마 밑에 팔다 남은 채를 놓고 흠뻑 젖은 옷을 벗어 물을 짜고 있는데 마루에 마른 옷이 보였다.

주섬주섬 입고 보니 상복이다. 엄 서방이 빈 문간방에 들어가려는데,

또 한사람이 사립문을 열고 들어온다. 오 생원 부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 남편이 이 밤중, 이 우중에 산속 십리길을 혼자 갈 위인은 아니니

그년 집에 갔을 거라 생각한 오 생원 부인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온 것이다.

부인은 다짜고짜 상복을 입은 엄 서방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목소리를 높였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뭐라고? 어머님 산소가 떠내려갈까 봐 묘소에 간다고?”

문간방 앞에서 오 생원 부인이 소란을 떨었지만 안방에서는 방아를 찧느라,

그리고 낙숫물 소리가 커 알아차리지 못했다.

오 생원의 부인은 채장수 엄 서방을 집으로 끌고 갔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여자 냄새에 엄 서방은 부인의 허리를 잡아당겼다.

빼는 척하던 부인이 불덩이가 되어 달라붙자 벌거벗은 두 사람은 문밖의 장맛비보다 더 세차게 운우를 나눴다.

가쁜 숨을 진정시키던 오 생원 부인이 엄 서방 턱수염을 만지더니 깜짝 놀라 소리쳤다. “당신 누구요? 당장 나가시오.”

부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자 엄 서방이 능글맞게 답했다.

“낯선 남자 허리춤을 잡아당겨 여기까지 끌고 와 사지의 기운을 쏙 뺄 땐 언제고 이제 와 쫓아내는 건 무슨 경우요?”

오 생원의 아내는 애원했다. “우리 남편 올지 몰라요. 빨리 나가 주시오.” 결국 그녀의 금비녀를 받고서야 엄 서방은 그 집을 나왔다. 그러곤 허 서방네 집으로 와 마루에 걸터앉았다.

안방에서 분탕질을 하고 나온 오 생원이 엄 서방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네 이놈, 감히 양반의 옷을, 그것도 상복을 훔쳐 입고 성할 것 같으냐!” 엄 서방은 코웃음을 쳤다.

“양반이면 양반답게 놀아야지. 엄연히 지아비 있는 여자의 샛서방이 되어가지고!”

기세등등하던 오 생원은 엄 서방과 허 서방이 같은 장돌뱅이 친구 사이라는 걸 알고는 사색이 됐다.

엄 서방은 결국 서른냥의 돈표를 받고서야 상복을 벗어 주고 입을 다물기로 했다.

오 생원이 사라진 후 채장수 엄 서방은 안방문을 두드렸다. “문 좀 열어주시오.”

허 서방의 아내는 단호하게 말했다. “안 됩니다. 문간방으로 가서 자고 가세요.”

그러자 엄 서방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양반이 오면 문고리를 풀어 주고 나 같은 상놈에게는 문고리를 단단히 걸어 놓겠다 이거군.”

결국 엄 서방은 안방으로 들어가 방아를 찧고 입막음으로 비단 한필을 챙겼다.

채장수 엄 서방은 하룻밤에 횡재를 셋이나 했다. 아니 다섯이다. 셋은 재물이요, 둘은 객고풀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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