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쌍과부
십여년 전 홀로된 시어머니와 삼년 전 청상과부된 며느리
열두칸 큰집에 주막 꾸리고 모녀처럼 정답게 지내는데…
가을이 깊어가면 구곡골은 온통 단풍으로 붉게 물든다. 계곡물도 떨어진 단풍잎을 안고 울긋불긋 물든 채 휘돌고 부딪치며 콸콸 쏟아져내린다. 새우젓장수가 바위에 지게를 기대놓고 곰방대를 빼내어 담배 한대를 맛나게 피우고는 좌우를 살피고 계곡으로 내려갔다. 거기서 바지를 훌렁 벗어던지더니 물가에 엉거주춤 앉아 얼음 같은 찬물로 사타구니를 씻었다.
산허리를 돌자 화전 밭뙈기들이 띄엄띄엄 나오고 열두어집이 저녁연기 모락모락 피우며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집들이라야 모두가 서너칸 너와집·억새집인데 한집은 열두칸 큰집에 돌담 울타리도 쳐졌다. 새우젓장수는 스스럼없이 열두칸 큰집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은 이집을 쌍과부집이라 부른다. 며느리와 시어머니 둘 다 과부다. 십여년 전 대주인 시아버지가 살았을 적만 해도 이집은 객방에 장사꾼들이 들끓는 객줏집이었다. 구곡골을 오가는 물산들이 이집 드넓은 곳간에 쌓였다가 당나귀나 노새 등에 바리바리 실려 대처로 나갔다. 이집 대주가 삼십대 중반에 병사하자 스무살도 안된 외동아들이 객줏집을 꾸려왔는데, 삼년 전 장마에 늙은 하주를 대신해 짐을 잔뜩 실은 노새와 함께 급류에 휩쓸려 시신도 찾지 못했다.
졸지에 청상과부가 된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객주를 꾸려갈 수 없어 문을 닫았지만, 오가는 낯익은 장사꾼들이 잠을 청할 땐 거절할 방법이 없다. 잠을 재우니 밥을 해주지 않을 수 없고 술을 찾으니 술을 빚지 않을 수 없어 자연스럽게 주막이 됐다.
그러나 아랫골에 갈림길이 생기고 객주가 들어서자, 쌍과부집에 들어서는 장사꾼은 가뭄에 콩 나듯 줄어 며느리나 시어머니가 바쁠 일은 없다. 시어머니는 자신이 죄를 지은 듯 청상과부 며느리를 애틋하게 감싸안아 처음 보는 사람들은 모녀간으로 생각한다. 며느리도 시어머니를 친정어머니처럼 정성을 다해 모신다. 서로 부르는 “어머님” “아가” 소리가 비단결처럼 부드럽다.
계곡에서 사타구니를 씻은 새우젓장수가 쌍과부집으로 성큼 들어서자 부엌에서 며느리가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나와 반갑게 인사를 하고는 구석진 객방으로 안내했다. 새우젓장수가 자기 방 앞에 지게를 세우고 목통을 열어 새우젓 한사발을 퍼서 부엌으로 가 “추젓이지만 씨알이 굵어 육젓에 못지않으이.” 며느리가 고맙다며 받았다.
산골의 어둠은 금세 사방을 칠흑으로 덮었다. 저녁상을 물리고 밤늦도록 막걸리 두호리병을 마신 새우젓장수가 곰방대로 연초를 태우고 나서 불을 껐다. 발걸음 소리도 없이 살짝이 문이 열리고 분 냄새가 확 풍기며 문이 닫혔다. 깜깜한 방에 치마 벗는 소리가 부스럭거리더니 한여인이 이불자락을 들치고 새우젓장수 품으로 파고들었다. 또 다른 여인은 마루에서 내려와 고양이 걸음으로 살금살금 새우젓장수 객방으로 다가가 문밖 쪽마루에 엉덩이를 걸쳤다.
방 안에서는 베갯머리송사가 한창이다. 새우젓장수의 팔베개에 안겨 한손으로는 목을 감고 다른 한손으로는 말뚝처럼 솟아오른 남근을 잡고 “왜 이리 오랜만에 왔소?” “나도 임자 보고 싶어 죽을 뻔했소.” 곧이어 쪽쪽 소리가 나더니 찔벅찔벅… “나 죽어!”
문밖에서 엿듣던 여인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객방을 돌아 제방에 들어가 농에서 목신을 꺼냈다. 새우젓장수와 삼합을 치른 여인이 닭이 울 적에야 객방을 나와 안채 제 방으로 들어갔다. 날이 밝았다. 새우젓장수가 묘한 웃음을 흘리는 며느리에게 방값 밥값을 쥐여주고 떠나갔다.
시어머니는 해가 중천에 떴을 때가 돼서야 부스스 일어났다. “어머님 어디 편찮으세요?” “아니다. 감기 기운이 좀 있는 것 같구나.” 간밤에 새우젓장수와 회포를 푼 시어머니는 생기가 돌았다.
닷새 전, 젊은 심마니가 객방에서 잘 땐 시어머니가 문밖에서 심마니와 며느리의 요란한 방사를 엿듣고는 불덩어리가 돼 자기 방으로 갔었다.
해웃값이 큰 심마니·사냥꾼·노름꾼·소장수는 며느리, 째째한 새우젓장수·방물장수·갓장수는 시어머니 단골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서로 그 짓을 아는지 모르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서로 영역을 침범하는 일이 없고 고부간은 여전히 정이 깊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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