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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반사/感動.野談.說話

갈처사

by 가마실 2022. 8. 31.

개울 옆 자갈밭에 어미 묘 쓰려는 소년

지나던 선비가 사연을 묻고 기막혀

‘갈처사’ 집 찾아 고함을 지르는데…

 선비 한사람이 시동 하나를 데리고 구름에 달 가듯이 길을 걷다가 고개 너머 개울가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젖살이 채 빠지지도 않은 열네댓 먹은 소년이 울면서 개울 옆 자갈밭을 삽으로 파고 있었다. 발걸음이 땅에 붙어버린 선비의 눈길이 닿은 곳은 소년 옆에 놓인 관이었다.

 선비가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 더욱 서러운지 소년은 삽질을 멈추고 삽자루를 죽장처럼 잡고 꺼이꺼이 울어댔다. 한참 울던 소년이 소매로 눈물을 훔치고 다시 구덩이를 파내려갔다. 구덩이 아래 흥건히 물이 고였다. 소년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허리를 폈을 때 선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젊은이, 지금 무얼 하고 있소?”

 소년은 목이 메어 끊어지는 소리로, “관을 묻으려고 합니다.”

 “그 관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 거요?”

 “오늘 아침에 돌아가신 우리 엄니가… 으흐흐흑.”

 소년은 관에 엎어져 울음을 그칠 줄 몰랐다. 선비의 궁금증은 점점 더해졌다. 산 위에 묘를 쓰다가도 물이 스며올라오면 묏자리를 옮기는 판에 물이 나올 게 뻔한 냇가 자갈밭에 제 어미 묘를 쓰겠다고 삽질을 하는 놈이 어디 있나! 선비가 벼락같은 호통을 쳤다.

 “네 이노~옴. 천하에 불효로다!”

 소년이 놀란 얼굴로 선비를 쳐다보며 “갈처사께서 이곳에 쓰라고….”

 선비가 노기를 누그러뜨리고 “갈처사가 누군가?”

 “저 산 중턱에 사시는 도인입니다.”

 ‘장난을 쳐도 유분수지, 이런 망할 놈의 도인이 다 있나.’ 선비는 혼잣말을 지껄이다가 시동에게 지필묵을 준비하라 일렀다.

 시동이 단봇짐을 풀어 지필묵을 가져오자 무언가 몇자 적어 소년 상주에게 주며 몇마디 얘기하니 소년은 그걸 품속에 넣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선비는 시동에게 관을 지키라 하고 소매를 걷어붙이며 산 위로 올라갔다. 칡넝쿨이 만수산처럼 얽힌 산길을 오르자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집이 빠끔히 나타났다.

 “갈처사란 위인이 이 우거에 사시오?” 냅다 고함을 지르자 방문이 열렸다. 자다가 깬 꾀죄죄한 노인이 너덜너덜한 겉옷을 걸치고 하품을 하며 “웬 뼈다귀가 고래대궐 내 집을 우거라 부르나?”

 선비는 다른 걸로 말다툼할 생각이 없었다. “나잇살이나 먹은 영감이 다른 일도 아니고 어린 소년에게 제 홀어미 묏자리를 그렇게 찍어주다니….”

 선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갈처사는 헐헐헐 웃더니 “개코도 모르면 주둥이라도 닫고 있으시오!” 정색을 하고 호통을 치더니 말을 이어갔다.

 “그 자리는 하관(下棺)도 하기 전에 쌀 삼백석이 들어올 자리요.”

 갈처사의 이 한마디에 선비는 눈이 왕방울만 해지고 입이 쩍 벌어졌다. 갈처사가 방에서 나오더니 새카만 맨발로 처마 밑에 서서 오줌발을 힘차게 갈기며, 한손을 눈 위에 펼쳐 산 아래를 내려다보더니 “헐헐헐, 벌써 쌀 삼백석이 오네그려.”

 선비도 돌아서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개미만 한 사람들과 달구지가 바리바리 개울가로 다가오고 있었다. 선비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정중하게 “처사님은 그런 혜안을 가지신 분이 어찌하여 이 외딴 산중, 이렇게 초라한 집에 칩거하고 계시오?”

 갈처사는 또다시 헐헐 웃으며, “이제 사람을 제대로 보네. 아까는 영감탱이라더니 이제는 님까지 붙여주고…. 사람은 똑바로 봤지만 이 집을 보는 눈은 아직도 멀었어. 나라님이 들르실 집이라고, 이 사람아!”

 선비가 또다시 놀라서 “나라님이라니?” “임금님 말이야, 임금님!” 갈처사는 선비에게 삿대질을 해댔다. 선비가 웃으면서 물었다. “임금님이 언제 온대요?”

 “가만히 있어 봐. 언제더라? 적어놓은 걸 봐야지.” 갈처사가 방으로 들어갔다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뛰쳐나와 선비 앞에 꿇어앉아 머리를 땅바닥에 박고 벌벌 떨면서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선비가 껄껄 웃으며, “일어나시오, 갈처사.”

 평복 차림으로 민정 살피기를 즐기던 숙종. 그 선비는 바로 숙종 임금이었고 산을 오르기 전 소년 상주에 써줬던 서찰엔 ‘수원 현감은 이 소년에게 쌀 삼백석과 함께 장례를 잘 치러주도록 하라’고 쓰여 있었다.

 숙종임금은 갈처사에게 자기 묏자리를 잡아 달라고 부탁했다. 갈처사가 짚신 열두켤레를 없애고 잡은 곳이 지금의 서오릉이다.

 숙종이 삼천냥을 내려보내자 갈처사는 삼십냥만 받고 나머지는 돌려보냈다. 갈처사가 있던 칡 ‘갈(葛)’, 고개 ‘현(峴)’ 칡넝쿨 고개는 지금의 과천시 갈현동이고 개울은 수원천이다.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185)갈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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