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실 좋은 류 초시와 옥계댁
혼인한 지 3년이 지나도록 태기가 없어 애가 타는데…
류 초시와 그의 부인 옥계댁은 뭇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금실 좋은 부부다. 류 초시는 천석꾼 부자에 신언서판 어디 하나 모자란 데가 없고 후덕한 인품까지 갖췄다. 부창부수라 양반 대가에서 시집와 남편을 하늘같이 받들고 시부모를 잘 모셔 효부로 칭송받은 옥계댁은 인물까지 빼어났다.
그러나 천지신명께서는 모든 걸 주지 않고 하나를 빠뜨렸다. 시집온 지 3년이 지났건만 옥계댁에게 태기가 없는 것이었다. 조선 팔도강산 용하다는 의원을 다 찾아가 약을 지어와 달여 먹어도, 새벽마다 삼신할미에게 손이 닳도록 빌어도, 영험하다는 백일기도를 드려도 옥계댁 뱃속에는 아기가 설 줄 몰랐다.
류 초시는 사흘 거리로 안방을 찾아 옥계댁을 안았다. 애가 타는 것은 옥계댁이었다. 어느 날 밤, 밤일을 치르고 류 초시의 팔베개에 안긴 채 옥계댁이 말했다. “나리, 온 세상 남자들이 첩실을 얻어 살림을 차려주는데 어째서 나리는 그렇게 무심하십니까?” 류 초시는 한 손으로 옥계댁 볼기짝을 철썩 치며 답했다. “그런 소리 두번 다시 했다가는 내 손이 아니라 곤장으로 부인의 볼기짝이 터지도록 매우 칠 것이오.”
옥계댁은 흐느꼈다. 시앗을 얻어도 절대 투기하지 않겠다, 집안의 손을 끊는 것은 칠거지악의 하나니 이 집을 떠나겠다, 온갖 청을 넣어도 류 초시는 막무가내였다.
류 초시는 누구네는 10년 만에 아들을 낳았다는 둥, 아이가 안 서는 게 자기 탓인지도 모르겠다는 둥 둘러대다가 부인이 달거리가 없어질 때까지도 삼신할미가 외면한다면 동생네 조카 하나를 양자로 들여오겠다고 말했다. “나리께서 소첩의 마음을 아프지 않게 하려는 배려인 줄은 알지만, 그래도 너무하십니다.” 옥계댁이 류 초시 가슴을 파고들며 눈물바다를 이뤘다.
초승달이 감나무 가지에 걸린 깊은 가을밤, 류 초시가 잔칫집에 갔다가 만취가 돼 안방을 찾았다. 의관을 훌훌 벗어 던지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 옥계댁 속치마 끈을 풀었다. 류 초시는 요란하게 합환을 했건만 그날 밤따라 옥계댁은 목석처럼 반응이 없었다. “부인, 무슨 일 있소?” 옥계댁은 대답도 없이 가쁜 숨만 할딱거렸다. 류 초시도 큰 숨을 토하고 잠이 들었다.
섣달이 되자 옥계댁이 신 것을 찾고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류 초시가 밤마다 안방을 찾아 옥계댁 배에 귀를 갖다 댔다. “천지신명님, 삼신할미님.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류 초시는 감격해 읊조렸다. 옥계댁은 더이상 류 초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설이 가까워져 오자 옥계댁 배가 눈에 띄게 불러오기 시작했다. 류 초시가 옥계댁을 가마에 태워 30리길 친정으로 보냈다. 열흘이 멀다 하고 류 초시는 처가로 달려왔다. 류 초시는 사랑방에서 장인과 함께 잤다. 옥계댁 배에 귀를 댈 수 없었다.
겨울이 가고 봄이 가고, 삼복 중에 옥계댁은 달덩이 같은 아들을 출산했다. 출산한 지 두달 만에 산모 옥계댁이 아들을 안고 가마를 타서 시집으로 왔다. 유모가 따라왔다. 아들이 젖을 얼마나 빨아 먹는지 산모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어 유모를 구했다는 것이다. 유모가 젖 먹이는 시간을 빼고는 갓난아이는 류 초시의 품을 빠져나가지 못했다.
넓은 미간, 짧은 인중. 갓난아이는 류 초시를 빼다 꽂았다. 유모는 시집갔다가 그해 남편이 죽자 청상과부가 돼 시집에서 쫓겨난 옥계댁의 한살 터울 팔촌 여동생이다. 친모가 누구인지는 옥계댁과 유모만 알고 있다.
☞다반사/感動.野談.說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