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에 간 안 생원의 며느리, 웬 아리따운 젊은 여인의 목에 시어머니의 관에 부장품으로 넣은 목걸이가 걸려 있는 걸 보게 되는데…
장에 간 안 생원의 며느리가 걸음을 멈추고 벌린 입을 다물 줄 몰랐다. 곱게 생긴 웬 젊은 여인의 목에 걸린 은목걸이가 생전에 시어머니가 한평생 걸고 다녔던 그 은목걸이임이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독실한 재가 불자였던 시어머니는 금은세공사에게 특별히 부탁해 백팔염주 끝에 은으로 만(卍)자를 만들어 달았었다. 3년 전 시어머니가 이승을 하직하자 저승길에도 목에 걸고 가라고 그 은목걸이를 부장품으로 관 속에 넣었다. 그런데 듣도 보도 못한 웬 여인이 그 은목걸이를 목에 걸고 장터를 활보하니,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며느리는 그 여인을 따라다니며 그 목걸이를 보고 또 봤지만 대추나무 백팔염주에 은으로 빚은 만(卍)자, 틀림없이 시어머니의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여자는 백년 묵은 여우인가? 아니면 묘를 파헤쳐 관 속에 든 부장품을 훔쳐가는 묘구인가?
“도둑이야!” 장터가 떠나가도록 목이 터져라 고함치며 그 여자 허리띠를 잡았다. 사람들이 병풍을 치고 순찰포졸이 왔다. 안 생원 며느리와 목걸이를 한 여인은 동헌으로 갔다.
“어어, 너는 추월관의 청매 아니냐!” 추월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기생, 청매를 알아본 사또가 놀라자 청매가 말했다. “나리, 이 미친년한테 날벼락을 맞아 아직도 가슴이 두근 반 세근 반입니다요.” 사또가 안 생원의 며느리로부터 청매가 건 은목걸이에 대한 소상한 설명을 듣고 나서 청매에게 목걸이를 입수한 경위를 물었다. “술값으로 손님한테 받았습니다요.” 대답을 더듬자 사또가 되물었다. “술값으로 은목걸이를 받았다면 수기생이 갖고 있든가 주모가 갖고 있어야지 왜 네가 갖고 있느냐?” 청매가 대답을 못하고 얼굴을 붉히자 이방이 사또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술값이 아니고 해웃값이겠지요.” 사또가 빙긋이 웃었다. 사실 사또도 몇번 품어본 기생이다. 하여튼 기가 막힐 노릇이다. 3년 전 관 속에 넣었던 은목걸이가 어떤 경로로 기생 청매의 목에 걸리게 됐는가?
이방이 역추적해 사연을 밝혀내는 데는 보름밖에 걸리지 않았다. 3년 전 장질부사로 안 생원의 마누라가 죽자 한평생 걸고 다녔던 은목걸이를 저승길에도 걸고 가라고 관 속에 부장품으로 넣었다. 오일장을 치르며 서럽게 울던 안 생원이 마누라를 한번 더 보겠다며 병풍 뒤에 있는 관을 열고 대성통곡을 했다. 그때 은목걸이를 슬쩍 집어 상복 소매 속에 감췄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 은덩어리를 땅속에 묻는 게 너무 아까웠다.
탈상하고 나자 사십대 중반밖에 안된 홀아비 안 생원은 여자 생각이 났다. 산자락 외딴집에서 묵을 팔고 탁배기도 빚어 파는 홍 과수댁에 안 생원의 발길이 잦았다. 그러나 사십대 초반인 홍 과수댁은 좀체 안 생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달포 전쯤, 술에 잔뜩 취한 파락호 류 초시가 늦은 밤 문 닫기 직전에 묵집에 들어와 호탕한 웃음을 날리며 탁배기 한사발을 마시더니 갑자기 홍 과수댁을 쓰러뜨리는 게 아닌가. 허우대 멀쩡한 젊은 류 초시에게 홍 과수댁은 앙탈을 부리지 않고 그러는 척만 했다. 홍 과수댁은 가끔 이 남자 저 남자에게 치마를 벗지만 그날 밤만큼 까무러졌던 적이 없었다. 류 초시의 현란한 방중술에 홍 과수댁은 몇번이나 숨이 넘어갔다.
홍 과수댁이 상사병에 걸렸다. 오매불망 류 초시 품에 다시 안길 날만을 기다렸다. 가끔 친구들과 함께 온 류 초시는 묵과 탁배기만 먹고 떠나 홍 과수댁 애간장만 녹았다.
그것도 모르고 안 생원은 홍 과수댁 묵집 문지방이 닳도록 들락날락했다. 마침내 안 생원이 홍 과수댁 치마를 벗겼다. 목에 걸면 소원성취를 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은목걸이를 홍 과수댁 수중에 쥐여줬다. 홍 과수댁은 파락호 류 초시 목에 은목걸이를 걸어주고 또 한번 온몸이 녹신녹신하도록 젊은 그의 품에 안겼다. 류 초시는 소원성취 목걸이를 받고 홍 과수댁에게 하룻밤 시혜를 베풀었지만 그의 과녁은 다른 데 있었다. 다름 아닌 추월관의 청매였다. 그도 소원을 이루고 은목걸이를 청매에게 넘겼던 것이다.
이방이 기생 청매의 목에 걸리게 된 은목걸이에 대한 수사보고를 마치자, 사또 왈. “이방은 듣거라. 안 생원 며느리에게는 이렇게 말하렷다. 금은세공사가 안 생원 마누라의 맞춤 은목걸이를 만들어 놓고 보니 너무 예뻐 대여섯개를 더 만들었다고! 이것이 안 생원이 살길이야.”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256)은목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