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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다운 우정(友情)을 위한 마음가짐

by 가마실 2023. 12. 26.

[참다운 우정(友情)을 위한 마음가짐]

 

 

"交友 須帶三分俠氣 作人 要存一点素心(교우 수대삼분협기 작인 요존일점소심)!"

 

"벗을 사귐에는 모름지기 남의 어려운 처지를 외면(外面)하지 못하는 의(義)로운 마음을 지녀야 하며,

 

사람됨에는 반드시 순수(純粹)하고 깨끗한 마음을 간직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키케로'는 "우정(友情)에 대해서는 다른 사물(事物)에 있어서와 같이 싫증이 난다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오래 계속(繼續) 될수록 좋은 법이다.

 

마치 오랜시간을 보낸 포도주처럼 달콤해지는 것이 당연한 이치(理致)이며 세상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정을 다하기 위해서는 함께 여러 말(斗)의 소금을 먹어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정은 함께 하지 않으면 영속(永續)되지 않는다. 아픔을 함께 해야 하고 기쁨이며 슬픔까지 함께 해야 그 진액(津液)을 건져 올릴 수가 있다.

 

함께 해보지 않은 우정에는 진액이 걸러지지 않는다. 그것은 그대가 입고 있는 옷처럼 껍질뿐인 경우가 많다.

 

껍질로서의 우정은 오히려 화사(華奢)하게 보인다. 감미롭게 느끼며 피부까지 닿아 그 느낌을 한결 강(强)하게 해준다.

 

그 껍질 속에는 한 점의 본 마음이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을 사람들은 마치 아파트의 열쇠나 자동차의 열쇠처럼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 때문이다.

 

필요할 땐, 끄집어내어 사용(使用)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할 일없이 자신(自身)의 캄캄한 호주머니 속에 가둬 두기를 좋아한다.

 

우정이야 말로 그대 인생의 술(酒)이 되게 하라! 그대 기쁨을 함께 하고, 슬픔을 함께 할 수 있는 향기(香氣)로운 한 잔의 술이 되게 하라!

 

'볼테르'가 말했습니다. "우정이란, 다감(多感)한 마음을 지닌 두 사람의 유덕(有德)한 인사(人士)가 서로 주고받은 암묵(暗默)의 계약(契約)이다!"

 

 

[우정(友情)의 이상(理想)]

 

옛날 사람들은 우정(友情)에 관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많이 남겨놓았다. 한문(漢文)에서는 진정한 친구(親舊)를 '지기(知己)'라고 일컫는다. 지기란 곧,'나를 알아주는 자'란 뜻이다.

 

우리는 인생에서 많은 친구를 갖는다. 술친구, 노름 친구, 말동무, 취미(趣味)를 같이 하는 동호자(同好者),

 

뜻을 같이하는 동지(同志), 직업 또는 사업상의 친구, 어릴 때 놀던 죽마지고우(竹馬之故友) 등 인생에는 여러 친구가 있다.

 

 

그러나 지기는 새벽별처럼 드물다. 지기를 또한 막역(莫逆)의 벗'이라고도 한다. 막역이란 말은 장자(莊子)에서 나오는 말인데 마음에 거역(拒逆)함이 없다는 뜻으로서

 

서로 의기투합(意氣投合)하고 마음이 꼭 맞는 친구를 말한다. 또 한문에서는 친밀(親密)한 우정을 말할 때 금란지교(金蘭之交), '금란(金蘭)의 벗'이라고도 한다.

 

 

역경(易經)에 이런 말이 나온다. "二人同心 其利斷金, 同心之言 其臭如蘭(이인동심 기이단금, 동심지언 기취여란):

 

친구가 마음을 같이할 때 그 견고(堅固)함은 굳센 금(金)을 단절(斷切)할 수가 있으며, 마음의 하나가된 우정의 아름다움은 향기(香氣)가 맑은 난초(蘭草)와 같다."

 

이러한 말에서 금난의 벗이라는 말이 유래(由來)했다. 우정의 힘이 얼마나 크고, 우정의 향기가 얼마나 맑은 가를 잘 나타낸 말이다.

 

 

우정의 두터움을 최고도로 표현한 말은 아마 '문경지교(刎頸之交)'라는 말일 것이다. 문(刎)은 자른다는 뜻이요, 경(頸)은 목이다.

 

친구를 위해서는 목이 잘리어도 좋다는 뜻이다. 중국(中國) 사기(史記)에 나오는 고사(故事)에서 유래(由來)한 말이다.

 

 

동양(東洋)에서 널리 알려진 아름다운 우정의 이야기로서 '관포지교(管鮑之交)와 백아절현(伯牙絶絃)'이 있다.

 

관포지교의 요지(要旨)는 이렇다. 춘추시대(春秋時代)에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라는 두 막역한 친구가 있었다.

 

둘이는 같이 장사를 했다. 이익(利益)의 분배(分配)를 할 때에 관중은 포숙아보다도 많은 몫을 차지했지만,

 

포숙아는 그를 욕심쟁이 라고 나무라지 않았다. 관중이 자기보다 가난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관중이 직장(職場)에서 번번이 파면(罷免)되었지만 무능(無能)한 자라고 나무라지 않았다. 사람의 일에는 운(運)과 불운(不運)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戰爭)할 때마다 관중은 도망을 쳤지만 비겁(卑怯)한 자라고 비웃지않았다. 그에게는 늙은 어머니가 있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에 관중은 천하(天下)를 움직이는 대정치가(大政治家)가 되었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를 낳은 것은 나의 어머니지만, 나를 알아주는 것은 포숙아다(生我者父母 知我者鮑子也: 생아자부모 지아자포자야)‘ 이것은 열자(列子)에 나오는 이야기다.

 

진정한 친구는 관중과 포숙아의 경우처럼 서로 깊이 이해해 주는 자다.

 

 

깊은 상호(相呼) 이해는 우정을 성립시키는 필수적요소다. 열자(列子)에 나오는 백아절현의 이야기도 같은 정신을 말한다.

 

춘추시대(春秋時代)에 '백아(伯牙)'라는 거문고의 명수(名手)가 있었다. 그의 친구 종자기(鍾子期)는 그 거문고를 듣는 명수(名手)였다.

 

백아가 높은 산(山)을 생각하면서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는 높이 솟는 태산(泰山)과 같다고 그 곡(曲)을 칭찬했다.

 

백아가 흘러가는 강물을 생각하면서 거문고를 타면 양양(洋洋:양양하다:바다가 한없이 넓다)한 큰 강이 눈앞에 떠오르는 것 같다고 칭찬했다.

 

백아의 거문고의 가락(歌樂)을 종자기는 언제나 틀림없이 알아냈다. 두 사람의 마음이 서로 투합(投合)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종자기가 병(病)으로 세상을 떠났다.

 

백아는 자기의 거문고를 부수고 다시는 거문고에 손을 대지 않았다. 이것이 이른바, 백아파금(伯牙破金) 또는 백아절현(伯牙絶絃)의 고사다.

 

백아는 그의 음악을 알아주는 지기가 없어졌기 때문에 다시는 거문고를 탈 의미와 보람이 없어진 것이다. 서로 의기투합한 깊은 우정의 아름다움을 말한 이야기다.

 

 

우정은 사랑과 존경(尊敬)의 조화(調和)다. 사랑 속에 존경을 잃지 않고 존경 속에 사랑을 잃지 않는 것이 진정한 우정이다.

 

칸트는 우정의 정의(定義)를 이렇게 내렸다. "우정은 두 개의 인격(人格)이 서로 같은 사랑과 존경에 의해서 하나로 융합(融合)하는 것이다."

 

친구는 서로 사랑하고 서로 존경해야 한다. 서로 애경하는 친구라야 일생동안 변치 않는 우정을 지속할 수 있다.

 

인간이 행복하게 살려면, 다정(多情)한 친구가 절대로 필요하다. 이 세상에서 완전한 고독(孤獨)에 견딜 수 있는 것은 신(神)과 짐승뿐이다.

 

인간은 완전한 고독에 빠지면 미쳐버리고 만다. 우리에게는 사랑이 필요하다. 그리고 따뜻한 정(情)이 요구된다.

 

우리는 인생의 좋은 친구를 얻기 위해서 애써야하는 동시에 나 스스로가 남의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서 부단히 힘써야 한다.

 

"진정(眞正)한 우정(友情)은 인생(人生)의 소중(所重)한 정신적(精神的) 가치(價値)이기 때문이다.!!.."

 

=모셔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