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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반사/感動.野談.說話

부자 되는 법

by 가마실 2024. 1. 9.

부자 되는 법

 


저녁나절, 오생원 집에 생전 발걸음을 않던 이초시가 찾아왔다.
오생원이 약간 비꼬는 투로 물섰다.
“지체 높은 초시 어른께서 어인 일로 찾아오셨나?”
이초시가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못 올 데를 왔나.”
오생원과 이초시는 서당친구였지만 살아가는 길이 달랐다.

오생원은 일찌감치 장삿길로 들어서 차곡차곡 재산을 쌓아 알부자가 됐지만,

이초시는 과거에 매달리다 낙방을 거듭해 가세가 기울어진 판이다.
“술 한잔하러 가세.”
이초시가 오생원 소매를 당겼다.

동구 밖 주막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이초시가 말문을 열었다.
“내 동생, 자네도 알지?”
“알고 말고.

천하의 한량이지.”
“쥐뿔도 없는 게 지가 무슨 호걸이라고 허구한 날 저자거리 두목 노릇을 하더니만 논밭 다 팔아먹고 며칠 전에는 집까지 날렸다네.”
한숨을 크게 쉬고 난 이초시가 부탁했다.
“자네가 내 동생을 데리고 다니며 장사 좀 가르쳐주게.”
이초시가 바짝 붙어앉아 통사정을 하며 너비아니 안주에 청주를 돌렸다.
“쩝, 여기저기서 그런 부탁을 받은 게 한두 개가 아닌데….” 하면서도 마지못해 청을 들어줬다.

오생원은 돈이 되는 거라면 똥오줌을 가리지 않았다.

이초시가 부탁했을 때 고추를 불며 배짱을 튕겼지만, 내심 그는 쾌재를 불렀다.
첫째 이초시 동생 맹복이는 큰 덩치에 힘이 좋아 함께 다니면 다른 장돌뱅이들이 해코지를 못할 터이고,

둘째 짐보따리를 손수 지고 다니는 수고를 덜 수 있어 좋고,

셋째 모든 잡일 다 시키고도 품삯 줄 필요가 없고….

 

보름 동안 맹복이를 데리고 장삿길에 올랐다.
집에서 만든 우황골신환과 해구신 건포를 궤짝에 싸서 맹복이가 짊어지고 오생원이 앞장섰다.
사흘째 되는 날 고래등 같은 기와집 대문을 두드려 사랑방으로 들어갔다.
“오생원, 지난가을에 구해온다던 거 가져왔어?”
늙어서 골골하는 영감이 다리를 주무르던 첩실을 내보내고 물어오자 오생원이 대답했다.
“말도 마십시오.

이걸 구하러 황포 돛배를 타고 울릉도에 가다가 풍랑을 만나 죽을 뻔했습니다요.”
맹복이 메고 온 고리짝을 열고 비단 보자기를 풀자, 향나무 상자 안에 한지로 열두 겹을 싼 해구신이 나왔다.
해구신을 비싸게 팔아먹고 그 집을 나서는데, 맹복이 입을 열었다.
“사부님, 하나 여쭙겠습니다요.

해구신은 물개 물건 아닙니까?

그런데 보신탕집에서 사온 개 물건을 말려 팔면?”
“야 이놈아. 장사란 원래 그런 거야.

진짜 해구신이라고 먹으면 벌떡 서는 줄 알아?

해구신이라 믿고 먹으면 그게 정력제야!”
“사부님, 울릉도는 언제?”
“시끄러, 임마.”

맹복이 어리둥절해하며 뒤따르다가, 날이 저물어 나루터 주막에 들어갔다.
“잘 있었어, 풍천댁?”
오생원이 주모의 엉덩이를 치자 그녀는 싱긋 눈웃음을 치며 답했다.
“쇤네 목간한 날 알고서 찾아왔소?”
오생원은 기침이 심해 어떤 때는 피까지 토하면서도 색(色)을 밝힌다.
이렇게 둘은 한 달 동안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가짜 해구신 다섯 개를 팔고 아편을 넣은 우황골신환을 떨이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삼 년을 다녔는데, 문제는 어느날 오생원의 기침이 깊어지고 피 토하는 빈도가 잦아지더니 마침내 드러눕고 만 것이다.
“사부님, 빨리 쾌차해야 장삿길에 나서는데….”
매일 오생원 집으로 출근하는 맹복이에게 말했다.
“내 장사수법을 너에게 다 가르쳐줬다. 콜록콜록...”
눈만 껌벅거리던 맹복이 대답했다.
“저는 그런 식으로 부자되기는 싫습니다.”
그때 오생원의 젊은 재취가 약사발을 들고 들어왔다.

본처는 애를 못 낳는 석녀라 몇 해 전에 쫓아내고 젊고 예쁜 재취를 들여 놓았지만 그녀도 애를 낳지 못했다.

약사발을 들고 들어온 오생원의 재취 부인이 갑자기 헛구역질을 하자 누웠던 오생원이 눈을 부릅떴다.

“몇 달 됐노?” 하고 묻자, 부인은 고개를 떨구는데 맹복이가 넙죽 말했다.
“넉 달 됐습니다.”
지난 일 년 간 합방한 사실이 없다는 걸 떠올린 오생원이 뼈만 남은 팔을 뻗어 맹복이를 가리키며 “너 이놈, 켁켁.”

피를 크게 토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퀭하니 눈만 뜨고 있는 오생원에게 맹복이가 한 마디 했다.
“사부님, 나는 이런 식으로 부자가 되렵니다.”

그날 밤, 오생원은 죽고 맹복이는 오생원 재취와 가시버시가 되어 오생원이 한평생 모은 재산을 손쉽게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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