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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반사/感動.野談.說話253

월천꾼 팔목이 구월천엔 배도 없고 다리도 없어 오가는 길손들은 바짓가랑이를 한껏 올리고 스스로 건너든가 아니면 월천(越川)꾼 등에 업혀가는 수밖에 없다. ​ 이곳 월천꾼 팔목이는 부지런해 이른 새벽부터 어두워질 때까지 개울 옆을 지킨다. ​ 팔목이는 알부자로 소문났다. 조실부모하고 어렵게 자라며 ‘돈이 없으면 죽는 수밖에 없다’는 걸 어릴 적부터 체득해 제 주머니에 들어온 돈은 절대 나가는 법이 없었다. ​ 봄부터 가을까지는 월천꾼으로 돈을 모으고 겨울이면 산에 가서 나무를 해다 장에 팔았다. 논밭이 나왔다 하면 두꺼비 파리 잡아먹듯 얼른 낚아채는 사람이 바로 팔목이다. ​ 돈이라면 엄동설한에 발가벗고 십리를 가서 일전 한 닢이라도 주워올 팔목이지만 단 한사람, 신통암 허대사에게만은 돈을 받지 않는다. ​ 응달진 산자.. 2021. 3. 15.
영악한 마누라 ?영악한 마누라 ? *** 오십줄에 들어선 과부 웅천댁 앞에만 서면 늙은이든 젊은이든 사족을 못 쓴다. 웅천댁은 지주요 동네 사람들은 소작농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소작농 범수가 불려 갔더니 웅천댁 왈, “이 사람아, 내일 아침에 고리짝 하나 메고 친정에 좀 가세. 친정아버지 생신이라네.” 어느 명이라 거절하겠나. 이튿날 새벽, 비단옷을 넣은 고리짝을 메고 웅천댁을 따라 길을 나서자마자 눈발이 휘날리더니 이내 폭설이 되었다. 동지섣달 짧은 날도 일찍 출발하면 밤이 늦기 전에 친정에 도착할 수 있는데 눈길이 발목을 잡아 할 수 없이 갯나루 주막에서 하룻밤 묵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웅천댁이 말했다. “방값도 비싼데 두방 쓸 일이 뭐 있겠나. 자네는 내 아들 행세를 하게.” 둘이서 국밥을 먹고 범수는 막걸.. 2021. 3. 15.
막실이 막실어미가 폐병에걸려 노첨지로부터 장리쌀을 빌려다가 병을 고쳤지만 온 식구들 목줄이 걸려 있는 논 세마지기, 밭 두마지기는 노 첨지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 늙은 노 첨지가 논 세마지기, 밭두마지기 를 돌려주고 꽃다운 열일곱 막실이를 사와서 재취로 들여놓았다. ​ 흑단 머리에 백옥 같은 살결, 또렷한 이목구비에 아직도 솜털이 가시지 않은 꿈 많은 이팔청춘 막실이. ​ 줄줄이 어린 동생들 배 굶기지 않겠다고 제 어미 눈물을 닦아주고 제 발로 노 첨지에게 간 것이다. ​ 노 첨지네 식구들은 단출하다. 막실이와 동갑내기인 노 첨지의 무남독녀와 우람한 덩치의 총각 머슴이 가족의 전부다. ​ 낯선 집에 안주인으로 들어온 앳된 막실이 눈에는 모든 게 아리송하기만 하다. ​ 노 첨지의 딸, 홍심이는 막실이에게 엄니 .. 2021. 3. 15.
설날 이초시 집이 발칵 뒤집혀졌다.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비취함이 없어진 것이다. 안방 장롱을 샅샅이 찾아도, 사랑방 다락을 바늘 찾듯 뒤져도 비취함은 나오지 않았다. “재작년에 장롱에 두기 불안하다며 당신이 은쟁반과 함께 사랑방으로 가져간 것 같은데….” 넋이 나간 이초시에게 안방마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역정을 냈다. 천석꾼 부자 이초시 집엔 집사·행랑아범· 침모·찬모·머슴 등 하인이 아홉이나 되지만, 그중 먼저 의심을 받은 사람은 집사 칠석이다. 하인 중 집 열쇠를 모두 갖고 있는 사람은 칠석이뿐이고, 더구나 칠석의 처는 안방 장롱을 마음대로 열 수 있는 침모 삼월이다. 모두가 칠석이를 수상히 여기자 칠석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러나 이초시는 비취함이 없어진 게 칠석이 짓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22년 전 칠.. 2021. 3.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