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반사474 문어 젖꼭지 허서방 선친이 운명한 지 일주기가 되어 소상 준비로 집안이 떠들썩하다. 뒤뜰에서는 멍석을 깔아놓고 허서방 숙부가 해물을 다듬는데 허서방의 새신부가 꼬치를 가지고 왔다가 발이 붙어버렸다. "아따 그 문어 싱싱하네... 우리 형님 문어를 억수로 좋아하셨지." 시숙이 손질하는 문어를 내려다보며 새신부는 침을 흘렸다. 밤은 삼경인데 일을 마치고 안방으로 들어온 새신부는 몸은 피곤한데 잠은 오지 않는다. 조금 있다가 허서방이 들어와 쪼그리고 앉아 한숨만 쉬는 새신부를 보고 "여보, 눈 좀 붙여야 내일 손님 치르지. 왜 한숨만 쉬고 있어?" 날이 새면 시아버지 소상날인데 종부인 새며느리가 서방한테 코맹맹이 소리로 한다는 말이 "문어가 먹고 싶어 잠이 안 옵니다." "문어가????" 한참 생각하던 허서방이 ".. 2023. 4. 1. 설날 설날 이초시네 집이 발칵 뒤집혀졌다. 조상 대대로 가보로 내려오는 비취함이 없어진 것이다. 안방 장롱을 샅샅이 찾아도, 사랑방 다락을 바늘 찾듯 뒤져도 비취함은 나오지 않았다. “재작년에 장롱에 두기 불안하다며 당신이 은쟁반과 함께 사랑방으로 가져간 것 같은데….” 넋이 나간 이초시에게 안방마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역정을 냈다. 천석꾼 부자 이초시 집에는 집사·행랑아범·침모·찬모·머슴 등 하인이 아홉명이나 되지만, 그중 먼저 의심을 받은 사람은 집사인 칠석이다. 하인 중 집 열쇠를 모두 갖고 있는 사람은 칠석이뿐이고, 더구나 칠석의 처는 안방 장롱을 마음대로 열 수 있는 침모 삼월이다. 모두가 칠석이를 수상히 여기자 칠석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러나 이초시는 비취함이 없어진 게 칠석이 짓이라 생각하지 않았.. 2023. 3. 29. 금부처 눈발이 펄펄 휘날리는 경상도 안동 땅에 꾀죄죄한 낯선 선비한사람이 보딸ㅣ 하나를 안고 나타나 천석꾼 부자 조참봉 댁을 찾아갔다. 조참봉에게 공손히 인사를 올린 젊은 선비는 목이 멘 목소리로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소인은 옹천 사는 허정이라 하옵니다. 연로하신 아버님께서 아무 이유도 없이 관가에 끌려가시더니 말도 안되는 이런저런 죄목을 덮어쓰고 덜컥 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엄동설한에 옥중에 계신 아버님 생각을 하면...." 효자 선비는 설움에 복받쳐 말을 잇지 못하고 어깨를 들썩이며 닭똥같은 눈물만 흘렸다. 눈물을 닦은 선비는 하던 말을 이어갔다. "이방이 찾아와 500냥만 내면 풀어주겠다는 귀띔을 주건만 그 거금을 마련할 길이 없어....." 젊은 선비는 가지고 온 보따리.. 2023. 3. 27. 귀생(貴生)과 섭생(攝生) 천덕이에 두드려 맞은 귀동이 노스님 따라 암자로 들어가… 서른여섯칸 고래 대궐 같은 민 대감댁에 오늘도 황 의원이 집사의 뒤를 따라 벅찬 숨을 토하며 뒤뚱뒤뚱 들어가고 시동이 진료 가방을 들고 그 뒤를 종종걸음으로 따라간다. 사랑방에 누워 있는 민 대감의 열두살 난 손자 민귀동의 가느다랗고 새하얀 팔뚝을 잡아 진맥을 하고는 “아직도 경기를 하고 있네요.” 황 의원도 한숨을 쉬고 민 대감도 방구들이 꺼져라 긴 한숨이다. 며칠 전 서당에 갔다 오던 민귀동이 저잣거리에서 엿판을 메고 엿장수를 하는 천덕이와 싸움이 붙어 코피가 터지고 흠씬 두드려 맞았는데 문제는 귀동이가 천덕이보다 두살 위라는 사실이다. 창피해서 서당에 못 가겠다며 사랑방에서 뒹굴뒹굴 꾀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똑똑 또르르 나무아미타불.” 민.. 2023. 3. 24. 이전 1 ··· 26 27 28 29 30 31 32 ··· 11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