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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반사474

욕지거리의 내력 조주청의 사랑방 야화 (88)욕지거리의 내력 강원도 관찰사가 송이버섯과 돈보따리를 싸 들고 한양에 올라갔다. 그가 찾아간 곳은 당대의 세도가이자 그의 후원자인 김판서의 첩네 집. 퇴청한 김판서가 의관을 갈아입고 장죽을 빨다가 관찰사를 맞았다. 두사람은 술상을 마주하고 앉아 이런저런 잡담을 나눴다. “여보게 관찰사, 요즘 내 체면이 말이 아닐세.” “대감께서 체면 깎이실 일이 무엇입니까?” “기력이 쇠했는지 도대체 잠자리가 되지 않아 첩에게 얼굴을 들 수 없네그랴.” 강원도로 내려온 관찰사가 강릉현감을 불렀다. “여보게 현감, 한양 김판서가 밤마다 체면을 구긴다네. 자네가 해구신 두개만 구해 주게나.” “걱정 마십시오.” 강릉현감이 현청으로 돌아와 이방을 불렀다. “이방, 한양 김판서의 잠자리 기력 보강을.. 2021. 3. 31.
설날 조주청의 사랑방 야화 설날 이초시 집이 발칵 뒤집혀졌다.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비취함이 없어진 것이다. 안방 장롱을 샅샅이 찾아도, 사랑방 다락을 바늘 찾듯 뒤져도 비취함은 나오지 않았다. “재작년에 장롱에 두기 불안하다며 당신이 은쟁반과 함께 사랑방으로 가져간 것 같은데….” 넋이 나간 이초시에게 안방마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역정을 냈다. 천석꾼 부자 이초시 집엔 집사·행랑아범· 침모·찬모·머슴 등 하인이 아홉이나 되지만, 그중 먼저 의심을 받은 사람은 집사 칠석이다. 하인 중 집 열쇠를 모두 갖고 있는 사람은 칠석이뿐이고, 더구나 칠석의 처는 안방 장롱을 마음대로 열 수 있는 침모 삼월이다. 모두가 칠석이를 수상히 여기자 칠석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러나 이초시는 비취함이 없어진 게 칠석이 짓이라 생각.. 2021. 3. 31.
어수룩한 촌사람 어수룩한 촌사람 서울 종로에서 가장 큰 원앙포목점의 곽첨지는 악덕 상인이다. 촌사람이 오면 물건값을 속이고 바가지를 왕창 씌운다. 조강지처를 쫓아낸후 첩을 둘이나 두고 화류계 출신 첫째 첩에겐 기생집을 차려줬고, 둘째 첩에겐 돈놀이를 시켰다. 어느 날 어수룩한 촌 사람이 머슴을 데리고 포목점에 들어왔다. 곽첨지는 육감적으로 봉 하나가 걸려들었다고 쾌재를 부르며 친절하게 손님을 맞았다. 촌사람은 맏딸 시집보낼 혼숫감이라며 옷감과 이불감을 산더미처럼 골랐다. 곽첨지는 흘끔 촌사람을 보며 목록을 쓰고 주판알을 튕겨 나갔다. "전부 430냥 입니다. 이문은 하나도 안 남겼습니다요." "끝다리는 떼버립시다. 내후년에 둘째 치울 때는 에누리 한 푼 안 하리다." "이렇게 팔면 밑지는 장산데 ㆍㆍ" 곽첨지는 짐짓 인.. 2021. 3. 31.
젓장수 조주청의 사랑방야화 젓장수 “새우젓 사려, 굴젓도 있어유.” 젓장수가 젓통 두개를 등에 지고 동네를 돌며 목청을 뽑자 개울 건너 앞산에 산울림이 되어 울려 퍼졌다. 스물두서너집 되는 작은 산골 동네 나지막한 초가집 굴뚝엔 집집마다 저녁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마당가 감나무엔 꼭대기에 매달린 몇개 남은 까치밥이 넘어가는 마지막 햇살을 잡고 불을 머금은 듯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추수를 해서 집집마다 곳간이 그득할 때라 조 한됫박을 퍼 와서 새우젓 한국자를 받아 가고, 나락 한되를 퍼 와서 굴젓 한종지를 받아 갔다. 새우젓장수 등짐에 젓은 줄었지만 곡식 자루는 늘어 더 힘들어졌다. 새우젓장수는 망설여졌다. 개울 건너 외딴집 하나를 보고 디딤돌을 조심스럽게 밟아 개울을 건너다가 허탕을 치면 어쩌나 싶어 큰.. 2021. 3.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