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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반사/感動.野談.說話253

귀생(貴生)과 섭생(攝生) 천덕이에 두드려 맞은 귀동이 노스님 따라 암자로 들어가… 서른여섯칸 고래 대궐 같은 민 대감댁에 오늘도 황 의원이 집사의 뒤를 따라 벅찬 숨을 토하며 뒤뚱뒤뚱 들어가고 시동이 진료 가방을 들고 그 뒤를 종종걸음으로 따라간다. 사랑방에 누워 있는 민 대감의 열두살 난 손자 민귀동의 가느다랗고 새하얀 팔뚝을 잡아 진맥을 하고는 “아직도 경기를 하고 있네요.” 황 의원도 한숨을 쉬고 민 대감도 방구들이 꺼져라 긴 한숨이다. 며칠 전 서당에 갔다 오던 민귀동이 저잣거리에서 엿판을 메고 엿장수를 하는 천덕이와 싸움이 붙어 코피가 터지고 흠씬 두드려 맞았는데 문제는 귀동이가 천덕이보다 두살 위라는 사실이다. 창피해서 서당에 못 가겠다며 사랑방에서 뒹굴뒹굴 꾀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똑똑 또르르 나무아미타불.” 민.. 2023. 3. 24.
인정 많은 수월댁 인정 많은 수월댁 일찌기 조실부모하고 장가도 못 간 채 약초를 캐고 산삼을 찾아 산을 헤매는 두 형제는 앞집에 사는 수월댁을 누님이라 불렀다. 노총각 둘이 사는 집이라고 수월댁은 틈만니면 김치다 반찬이다 수시로 갖다 주고 때때로 쌓여 있는 빨래도 해 주고 바느질도 해줬다. 두 형제도 산삼을 캐서 한약방에 팔고 나면 경쟁적으로 박가분이다 방물이다 옷감 등등을 사서 수월댁에게 보답을 했다. 그러던 지난해 가을 어느 날, 동생은 산에 약초를 캐러 가고 형은 발목을 삐어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수월댁이 죽을 쒀서 들고 왔다. 발목을 주물러 주던 수월댁이 곁눈질을 하다가 깜짝 놀랐다. 형의 하초가 차양막 지주처럼 빳빳이 곧추선 게 아닌가. 인정 많은 수월댁은 나이 찬 총각이 기운은 용솟음치는데 장가도 못 간 것이 .. 2023. 3. 21.
춘정 춘정 과거에 낙방하고 말을 타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박도령은 한숨을 쉬는 대신 휘파람을 불어댔다. 처음 본 과거 시험이었고 조금만 더 공부를 하면 내년엔 거뜬히 붙을 것 같은데다 천성이 원래 낙천적인 사람이다. 꽃피고 새우는 춘삼월 호시절에 산들바람은 목덜미를 간질러 대고 만산에는 진달래가 붉게 타오르며 나비는 청산 가자 너울너울 춤을 추었다. 게으른 숫말은 책찍질을 하지 않앗는데도 저절로 걸음을 재촉했다. 산허리를 돌자 박도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빙긋이 웃었다. 엉덩이가 빵빵한 암말이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며 앞서 가고 있었다. 암말 위에는 초로의 영감님이 첩인 듯한 젊은 여인을 뒤에서 껴안은 채 끄덕끄덕 산천경개 구경하며 한가로이 가고 있었다. 박도령의 숫말이 재바른 걸음으로 암말 사타구니 가까이 코를 벌.. 2023. 3. 21.
전화위복 전화위복 공씨댁은 설움이 북받처 올랐다. 동네 여편네들은 모두 한양 구경을 간다고 야단법석을 떠는데 혼자만 빠지게 되었다. 맏아들에게 한양 구경 가겠다고 말을했더니 “엄니는? 이 보릿고개에 어찌 그리 한가한 말을 한다요.” 핀잔을 주었고, 고개 너머 둘째아들에게 얘기했더니 “사람만 북적거리는데 뭣하러 사서 고생을 하려고 하느냐며” 퇴박을 줬다. 그날 밤 공씨댁은 이 생각 저 생각에 한숨도 이루지 못했다. 얘구 드러운 내 팔자 딸가진 년들은 구루마 타고 한양을 간다는디...공씨 가문에 시집온 게 벌써 스물네 해다. 시름시름 앓던 신랑이 죽고 몇년 후 시부모도 이승을 하직하자 몇마지기 안 되는 논밭이지만 혼자서 농사짓고 길쌈을 하며 이를 악물고 두 아들을 키웠다. 매파가 좋은 재취자리를 얘기할 적마다 호통쳐.. 2023. 3.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