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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반사/感動.野談.說話253

삼신할매 온 세상이 깊은 잠에 빠진 적막강산. 오줌을 누러 다리 밑 움막을 나온 거지 아이의 눈에 개울 얼음장 위 떨어진 보따리 하나가 희미하게 들어왔다. 다리 위를 지나가던 소달구지에서 쌀가마라도 떨어진 걸까, 다가갔더니 이게 무엇이냐! 술 냄새가 진동하는 걸 보니 취객이 다리에서 떨어진 것이다. 북풍한설은 몰아치는데 금방 떨어진 게 아닌 듯 옹크리고 모로 누워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얼굴을 만져보니 돌처럼 차가웠다. 움막으로 달려가 할배를 깨웠다. 할배가 그 취객을 움막으로 끌고 들어가 모닥불을 피우고 팔다리를 주물렀다. 희끄무레 동녘이 밝아올 때야 취객이 눈을 떴다. “우리 막동이 아니었으면 당신은 얼어 죽었소. 어찌 젊은 사람이 술을 그렇게….” 할배가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고∼고∼고맙습니다.” 젊.. 2022. 12. 21.
유진사와 강초시 허설, 삼대독자 유 진사와 혼례 몇년 만에 얻은 아들의 친부는… 저녁나절 허 대인이 서당에 찾아왔다. 개다리소반에 조촐한 술상을 마주하고 허 대인과 훈장님이 마주 앉았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가 오갔지만 훈장님은 허 대인이 서당을 찾은 이유를 알고 있었다. 이 서당엔 남학동이 열다섯명이요 여학동이 셋인데 여학동 중 하나가 허 대인의 셋째 딸 허설이다. 혼기가 찬 열일곱살로 신랑감 두사람을 저울질하고 있는데 그 두사람도 이 서당의 학동이다. 유 진사와 강 초시. 둘 다 놓치고 싶지 않은 출중한 신랑감이다. 유 진사는 천석꾼 집안의 삼대독자요, 강 초시는 깎은 밤처럼 반듯한 옥골에 허우대가 훤칠했다. 열여덟살 동갑내기인 둘 다 공부도 잘해 소과에는 단번에 붙어 유 초시, 강 초시로 불리다가 삼대독자 유 초시.. 2022. 12. 21.
송아지 황 서방, 장날 황장군 팔러 집 나서자 덕순은 시집 안 간다며 생떼 쓰는데… 수송아지 한마리를 산 황 서방이 마당에 들어서며 “덕순아∼. 이놈이 네 시집 밑천이여”라고 소리쳤다. 열세살 덕순은 옷고름을 입에 물고 송아지와 마주했다. 송아지가 커다란 눈을 껌벅이며 쳐다보자 덕순이 목덜미를 껴안았다. 따뜻했다. 밤에도 몇번이나 초롱을 들고 외양간에 가서 송아지를 쓰다듬었다. 뜨거운 구들장에 태워 먹은 이불로 이리 꿰매고 저리 기워 사흘 만에 송아지 조끼를 만들어 입혔다. 햇볕이 따뜻한 날 송아지를 데리고 밖에 나가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여간 좋아하지 않았다. 아버지 황 서방이 코뚜레를 해야 한다는 걸 덕순이 한사코 반대해 황 서방이 졌다. 코를 뚫지 않고 고삐를 매던 황 서방과 빗으로 등을 긁어주던 덕순 .. 2022. 12. 16.
홧김에 서방질 하다. 홧김에 서방질 하다. 홍진사는 천하에 둘도 없는 한량이다. 기생집에 들어가면 치마 입은 것들은 홍진사를 서로 차지하려고 버선발로 흙마당에 뛰쳐나왔다. 여승도, 양갓집 규수도, 소리꾼도 홍진사 앞에서는 사족을 못춘다. 허나 홍진사에게도 생전 처음 난관의 벽이 가로막았다. 이 마을 서당에 새로 부임해 온 젊은 훈장의 처가 자색이 보통이 아니었다. 얼굴 예쁘기로만 치면 기생들이 낫지만, 훈장의 처는 그 이상의 뭔가가 있었다. 얼음처럼 싸늘하고 깐 밤처럼 말끔한데다 매화처럼 이지적이다. 훈장이 학동들에게 글을 가르칠 동안 훈장의 처는 수묵을 첬다. 홍진사는 훈장 처에게 단단히 반해 훈장님과 글한다는 핑계를 대고 뻔질나게 서당을 들락거리며 수작을 걸기 시작했다. 멋모르는 훈장은 친구도 없이 외롭던 차에 좋은 술과.. 2022. 12.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