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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반사/感動.野談.說話253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백처사 부인 잃고 혼자 지내던 백 처사 어느 과부와 혼담이 오가는데 밀양의 선비촌, 류 진사는 천석꾼 부자에 학식도 높아 그의 사랑방엔 언제나 오가는 선비들로 넘쳐난다. 어느 날 허우대는 삐쩍 말랐으나 이목구비가 반듯한 백면서생이 들어왔다. 류 진사와 의례적인 통성명을 하고 사랑방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선비들이 술 한잔씩 마시고 저마다 글 자랑을 했다. “약무한사괘심두(若無閑事掛心頭·쓸데없는 생각만 마음에 두지 않으면).” 한 선비가 운을 뗐는데 대구(對句)를 이을 사람이 없다. 모두가 한숨만 쉬고 있는데 류 진사가 말했다. “백 처사께서 한 구절 이어주시지요.” 빈 잔에 술을 따르며 그를 바라보자 모기 소리만 하게 읊었다. “변시인간호시절(便是人間好時節·언제나 한결같이 좋은 시절)인 줄 압니다.” 이 구절은.. 2023. 1. 28.
콩 한홉 콩 한홉 천석꾼 부자 황참봉은 틈만 나면 지난여름 홍수 때 개울에 빠져 익사한 셋째아들 묘지에서 시름에 젖었다. 셋째놈은 자식들 중에서 가장 품성 좋고 똑똑해 초시에 합격하고 과거 준비를 하던 아끼던 아들이었다. 맏아들은 장사한다고 논밭을 팔아 평양으로 가더니 기생과 살림을 차리고 하인을 보내 돈만 가져갔다. 그 많던 돈을 기생 치마 속으로 다 처박아 넣고 계속 장사 밑천이 모자란다고 거짓말을 해대는 것이다. 둘째놈은 과거 보겠다고 책을 끼고 있지만 낮에는 책을 베개 삼아 잠만 자고 밤이 되면 저잣거리 껄렁패들과 어울려 기방 출입으로 새벽닭이 울어서야 몰래 들어왔다. 세간 날 때 떼어 준 옥답을 야금야금 팔아 치우는 것이다. 첫째며느리는 남편이 평양 가서 하는 짓을 뻔히 알고 있는 터라 자신은 사치스럽게.. 2023. 1. 24.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나쁜 마음 품다 혀 잘린 젊은이 부친 세상 떠나고 외톨이 되는데 밤이 깊어 풀벌레 소리만 요란한데 허 의원댁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적막을 깼다. ‘쾅쾅쾅’ 행랑채에서 자고 있던 사동이 눈을 비비며 “누구세요? 누구세요?” 고함을 쳐도 “어어어∼” 말도 못하며 대문만 쾅쾅 찼다. 사동이 대문을 열자 두손으로 피투성이가 된 입을 감싼 젊은이가 “어어어∼ 어버버∼” 벙어리 외침만 토했다. 사동이 보아하니 내일 아침에 다시 오라고 돌려보낼 처지가 아니다. 사동이 신발을 챙겨 신고 대문 밖으로 줄달음을 쳤다. 그날따라 허 의원은 첩 집에 간 것이다. 얼마나 기다렸나. 발을 동동 구르며 피를 쏟던 젊은이가 대문간에 주저앉아 웅크리고 있는데 허 의원이 동산만 한 배를 안고 뒤뚱거리며 사동을 따라왔다. 진찰실에 불을 .. 2023. 1. 14.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매형 내외에게 집에서 쫓겨난 득구 부친 영정족자 들고 암자 찾아가는데 큰 부자는 아니지만 먹고사는 데 아무 불편 없는 유 진사는 요즘 태산 같은 걱정이 생겼다. 시집간 외동딸이 석녀라고 2년도 안돼 시집에서 쫓겨나 보따리를 싸들고 친정으로 돌아와 제 방에 처박혀 한숨으로 나날을 보내는 것이다. 허구한 날 얼굴에 수심이 잔뜩 덮인 딸을 보는 것은 유 진사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는 일이었다. 어느 날 백형의 장례를 치르느라 먼 길을 가 삼우제까지 지내고 열흘 만에 집으로 돌아와 조심스레 딸의 동정을 살폈더니 딸이 먼저 사랑방으로 와 큰집 초상 치른 일을 물었다. 얼굴이 훨씬 밝아졌다. 딸의 수심이 걷힌 기쁨이 백형의 저승행 슬픔을 지우고도 한참 남았다. 중복이 가까운 어느 날 밤, 마실 갔던 유 진사가 배탈이.. 2023. 1.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