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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반사/感動.野談.說話253

한눈에 반하다. 단옷날 그네여왕 춘화 ​그녀에게 한눈에 반했다는 씨름장사와 혼례를 치르고 첫날밤 펑펑 우는데… “지화자~ 지화자 좋다. 녹음방창(綠陰方暢)에 새울음 좋고 지화자~.” ​ 기생 일곱이 뽑아내는 가락에 단오 분위기는 한껏 부풀어 올랐다. 가림막 아래 멍석을 깔고 사또와 육방관속, 고을 유지들은 술잔 돌리기에 여념이 없고 드넓은 아랑천 모래밭은 이골저골 열아홉마을에서 모인 남녀노소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천변의 회나무 그넷줄은 노랑저고리 분홍치마를 매달아 올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씨름판의 함성은 천지를 뒤흔들었다. ​ 기나긴 오월 햇살이 비스듬히 누울 즈음, 씨름판도 결판이 났고 그네도 여왕이 탄생했다. 오매골 노첨지의 셋째딸, 춘화는 올해도 그네 여왕이 되어 사또로부터 비단 세필을 받았다. 그런데 춘화의 .. 2022. 5. 20.
백송(白松) 백송(白松) 천석꾼 부자 백 진사…폐병 걸린 7대 독자와 시들어가는 백송 걱정에 한숨 그해 봄, 아들이 색주집을 드나들고 백송 가지마다 솔방울 달리는데… 천석꾼 백 진사는 새벽닭이 울 때까지 이 걱정 저 걱정 으로 잠을 못 이뤘다. 그러다가 홑적삼만 걸친 채 밖으로 나와 구름 걷힌 하늘에 오랜만에 두둥실 떠오른 만월(보름달)을 쳐다보고 간청했다. “천지신명이시여, 소인을 데려가고 두 목숨을 살려주소서.” 백 진사가 제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두 생명은 중 하나는 7대 독자인 아들 윤석이고, 다른 하나는 백송(白松)이다. 열일곱살 윤석이는 폐병이 깊어 기침이 끊이질 않고, 밤이면 요강에 검붉은 피를 토한다. 파리한 얼굴에 두 눈은 쑥 들어가고 광대뼈는 솟아올랐다. 키는 삐죽하게 컸지만 피골이 상접했다. 아.. 2022. 5. 18.
황토 개울물 아버님의 묘소를 다녀온 이판윤 그날 밤 어머니와 함께 또 다른 산소를 찾아가 절을 올리는데.. 서른셋 젊은 나이에 판윤(조선시대 한성부의 으뜸 벼슬)으로 봉직하는 이서붕이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왔다. 사또와 육방관속이 마중 나와 떠들썩해질까 봐 어둠살이 내릴 때 평상복 차림으로 말고삐를 잡은 하인 한 사람만 데리고 고향집에 들어갔다. 도착하자마자 홀로 지내시는 모친에게 큰절을 올렸다. ​ “바쁜 공무를 접어두고 어떻게 하경했는고?” “어머님 문안도 드리고 아버님 묘소도 찾으려고 윤허를 받아 내려왔습니다.” ​ 병풍을 등 뒤로 보료에 꼿꼿이 앉아 계시지만 어머니 얼굴의 주름은 더 늘었고, 머리엔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았다. 어머니는 찬모를 제쳐두고 손수 부엌에 나가 아들이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호박잎을 찌고 .. 2022. 5. 17.
소금장수 곽서방 노름판에서 모든걸 잃은 곽서방 저수지에 몸 던지려는 그때 물 위로 한여인이… 소금장수 곽서방은 노름판에 잘못 끼어들어 돈을 다 잃었다. 만회하려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함께 다니던 당나귀도 헐값에 넘겨 그 돈으로 또 골패를 잡았지만, 그마저도 이경(밤 9~11시 사이)을 넘기지 못한 채 빈손이 되었다. 가을 추수하면 받기로 하고 이집 저집 깔아 놓은 외상 소금값 치부책도 반값에 넘기고 또 붙었지만 새벽닭이 울 때 다 털렸다. 막걸리 한 호리병을 나팔 불고 노름판을 나와 마당 구석에서 순식간에 날려버린 당나귀를 안고 어깨를 들썩였다. 장마 뒤끝이라 서산 위에 그믐달이 애처롭게 걸려 있었다. 소금창고를 짓고 객주를 차리려던 포부도, 참한 색시를 얻어 장가가려던 바람도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이래 살아 뭐하.. 2022. 5.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