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반사474 갈처사 개울 옆 자갈밭에 어미 묘 쓰려는 소년 지나던 선비가 사연을 묻고 기막혀 ‘갈처사’ 집 찾아 고함을 지르는데… 선비 한사람이 시동 하나를 데리고 구름에 달 가듯이 길을 걷다가 고개 너머 개울가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젖살이 채 빠지지도 않은 열네댓 먹은 소년이 울면서 개울 옆 자갈밭을 삽으로 파고 있었다. 발걸음이 땅에 붙어버린 선비의 눈길이 닿은 곳은 소년 옆에 놓인 관이었다. 선비가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 더욱 서러운지 소년은 삽질을 멈추고 삽자루를 죽장처럼 잡고 꺼이꺼이 울어댔다. 한참 울던 소년이 소매로 눈물을 훔치고 다시 구덩이를 파내려갔다. 구덩이 아래 흥건히 물이 고였다. 소년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허리를 폈을 때 선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젊은이, 지금 무얼 하고 있소?” 소년은 목이 메어 .. 2022. 8. 31. 혁신(革腎) 최고급 가죽신 만드는 ‘노박’ 어느 날 은밀한 의뢰를 받는데 … 성은 노가요 이름은 박, 열여섯살 노박이 가죽공방에서 일한 지 십년이 됐다. 여섯살 때 가죽공방에 들어와 코를 흘리며 잔심부름을 하다가 오년만에 가죽을 만진 노박은 눈썰미가 있고 손재주도 남달랐다. 가죽공방에서는 가죽신발을 만들어 부잣집 아녀자나 고관대작에게 팔았는데, 가죽에 요철 문양을 넣는 값비싼 신발을 만드는 일은 최고 솜씨를 인정받은 노박의 차지다. 어느 날 공방에 한 부인이 찾아왔다. 대갓집 마님이나 여염집 부인하고는 무엇인가 좀 달랐다. 차림새부터 짧은 저고리 깃단이나, 치마끈을 아래로 내려 묶어 엉덩이 두쪽이 수밀도처럼 드러난 것이나, 코를 찌르는 박가분 냄새, 헤픈 웃음, 살랑대는 걸음걸이…. 신발을 쭉 훑어보더니 그녀가 꼭 .. 2022. 8. 31. 가출 하룻밤 객방지기 된 남정네 둘 초면의 어색함 술로 풀어보는데… 동구 밖 주막에 허 진사가 들어섰다. 기운이 쑥 빠진 목소리로 평상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주모, 술 한잔 주시오.” 몇순배 자작 술을 기울이더니, “주모, 나 오늘 밤 여기서 유숙하겠소.” “아니, 제집을 코앞에 두고 웬 객잠이오?” “그렇게 됐소.” 한마디 던지고 객방으로 들어가니, 드넓은 객방에 단 한사람만이 구석에 벽을 등지고 기대앉아 달걀로 멍든 눈을 비비고 있었다. 남정네 둘이 초면에 한방 신세가 되면 서로 어색하기 마련인데 그걸 풀어주는 건 술밖에 없다. “역곡에 사는 우 생원이라 합니다.” “허 진사라 합니다.” 우 생원이 한병, 허 진사가 한병을 사며 몇차례 술병이 들락날락하자 두사람은 하나하나 허물을 벗기 시작했다. 나이가.. 2022. 8. 29. “암행어사 출두야!!~.” 인심 좋은 합수리 국밥집에 죽통 멘 거지 소년 찾아오는데... 합수리 국밥집은 언제나 손님들로 넘쳐난다. 두개의 강이 서로 만나는 합수리는 뱃길이 닿는 포구요 육로가 동서남북으로 갈라지는 기점이라, 장사꾼들의 발길이 이곳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거기에 고을 현청까지 자리 잡아 언제나 장날처럼 떠들썩하다. 한끼 요기를 해치우고 북풍한설에 언 몸을 데우는 데는 국밥만 한 게 없다. 사십줄에 접어든 맘씨 좋은 국밥집 주인과 항상 생글생글 웃는 그의 마누라는 정신없이 바빠도 짜증 한번 내는 법이 없다. 밥이 모자란다고 하면 한주걱 더 주고, 염치없는 손님이 국물 좀 달라면 그냥 한국자 퍼준다. 저녁 늦게 밥과 국이 남으면 그것은 다리 밑 거지 떼들 차지다. 점심때가 지나면 국밥집 주인 내외도 한숨 돌릴 틈이 .. 2022. 8. 29. 이전 1 ··· 48 49 50 51 52 53 54 ··· 11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