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반사/感動.野談.說話253 찬모의 눈물 찬모의 눈물 이대감댁 하인·하녀들은 주인 내외를 하늘처럼 섬겼다. 주인의 인품이 훌륭해 잘못한 일이 있어도 눈을 감아 주거나 곱게 타이르지 절대로 큰소리 한번 치지 않았다. 하인·하녀들이 짝지을 나이가 되면 이리저리 중매를 서서 혼인을 성사시켜 넓은 안마당에 차양막을 치고 번듯하게 혼례식을 올려 준다. 허나 이대감 내외가 가슴 아파하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열두살 때 이 집에 들어와 이십년이 넘게 부엌일을 하는 찬모를 서른셋이 되도록 시집을 못 보낸 것이다. 박박 얽은 곰보 자국 때문이었다. 얌전하고 일 잘하고 입 무거운 찬모는 얼굴 빼고선 모자람이 없는 색싯감이건만 장가오겠다는 총각이 없었다. 독실한 불교신자인 안방마님이 9일 기도를 드리러 30리나 떨어진 유하사로 떠나던 날, 저녁나절부터 좌르륵좌르륵.. 2023. 5. 18. 찬모의 눈물 찬모의 눈물 이대감댁 하인·하녀들은 주인 내외를 하늘처럼 섬겼다. 주인의 인품이 훌륭해 잘못한 일이 있어도 눈을 감아 주거나 곱게 타이르지 절대로 큰소리 한번 치지 않았다. 하인·하녀들이 짝지을 나이가 되면 이리저리 중매를 서서 혼인을 성사시켜 넓은 안마당에 차양막을 치고 번듯하게 혼례식을 올려 준다. 허나 이대감 내외가 가슴 아파하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열두살 때 이 집에 들어와 이십년이 넘게 부엌일을 하는 찬모를 서른셋이 되도록 시집을 못 보낸 것이다. 박박 얽은 곰보 자국 때문이었다. 얌전하고 일 잘하고 입 무거운 찬모는 얼굴 빼고선 모자람이 없는 색싯감이건만 장가오겠다는 총각이 없었다. 독실한 불교신자인 안방마님이 9일 기도를 드리러 30리나 떨어진 유하사로 떠나던 날, 저녁나절부터 좌르륵좌르륵.. 2023. 5. 17. 종이쪽지 종이쪽지 풍산댁은 뒷집 도련님만 보면 가슴이 울렁거리고 뛰었다. 뒷집 도련님이 한산 세모시 남색 복건을 쓰고 서당에 갔다가 집으로 올 무렵, 풍산댁은 일부러 대문 밖에 나간다. 그와 눈을 마주칠 때 살짝 미소를 지어 보내면 도련님도 흘낏 풍산댁을 보며 생긋이 웃었다. 열여섯살 뒷집 도련님은 얼굴에 아직 솜털이 가시지 않았지만, 백옥 같이 흰 얼굴에 콧날은 오똑하고 큰 눈에 긴 속눈썹, 꼭 다문 붉은 입술이 깨물어 주고 싶도록 예쁜 얼굴이다. 그가 치마를 입었다면 영락없는 미인이 되지 싶다. 풍산댁네 다섯칸 초가집과 뒷집 홍진사네 서른세칸 큰 기와집 사이엔 담이 있지만 높지 않은 데다, 기와집은 터가 높아 뒷집 도련님이 방에서 들창을 열면 앞집 우물이 있는 초가 뒤꼍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마지막 무더위가.. 2023. 5. 17. 손이 세개? 손이 세개? 장날이 왔다. 백로가 지나자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맑고 산들바람은 서늘해, 한여름 발길이 뜸했던 장터로 어른·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몰려가 동네가 텅 비었다. 열일곱 벙어리 덕보는 장에 가지 않고 고추밭에서 고추를 한자루 따 와서 마당에 멍석을 깔고 펴 말렸다. 말 못하는 벙어리지만 덕보는 허우대가 멀쩡하고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빈 자루를 들고 또 고추밭으로 가려고 동네 어귀를 도는데, 허초시 아지매가 길바닥에주저앉아 발목을 잡고 울고 있다가 손짓으로 덕보를 불렀다. 보아하니 발목을 삔 것 같았다. 덕보가 뒤에서 겨드랑이를 잡고 허초시 아지매를 일으키자 그녀는 쓰러질 듯 덕보의 목을 껴안았다. 덕보가 절룩거리는 그녀를 부축해 집까지 데려다 주는데 얼굴이 화끈거렸다. 허초시 아지매가 팔을 올.. 2023. 5. 16. 이전 1 ··· 8 9 10 11 12 13 14 ··· 6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