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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반사/感動.野談.說話252

삼월이 삼월이 박 장군 댁에 먹구름이 몰려왔다. 그 정정하던 안방마님이 빙판에 넘어져 꼼짝 못하고 드러누운 것이다. 박 장군의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도 한풀 꺾여, 매일 사냥을 다니던 발길도 끊고 부인 병수발에 매달렸다. 목관(牧官)으로 한평생 봉직하고 물러난 박 장군은 오십줄에 들어섰지만 아직도 쌀 한가마를 번쩍 들어올리는데, 부인 병수발에 꼼짝도 못하니 죽을 지경이다. 살판난 사람이 하나 있다. 박 장군의 며느리다. 시집살이하던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드러누웠으니 꺼릴 게 없다. 입 무거운 시아버지 박 장군은 며느리에게 잔소리할 위인이 아니요, 남편은 함경도 변방에서 군 복무중이라. 입 속의 혀 같은 몸종 삼월이까지 옆에 있으니 제 세상이 온 것이다. 엉치뼈에 금이 가 일어나 앉지도 못하는 시어머니가 두 해.. 2024. 1. 9.
노응대감 노응대감 노은(魯銀)대감은 임금을 모시고 한평생 궐내에서 승지로 봉직하다가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해 사랑방에 진을 치고 향리의 선비들과 고담준론을 나누고 술잔을 돌리며 세월을 낚고 있다. 자주 어울리는 사람은 청죽(靑竹)대감이다. 청죽대감으로 말하자면 죽마고우이자 같은 서당을 다니던 동창으로 함께 급제하여 나라의 녹을 먹다가 낙향한 사이. 청죽대감의 여동생이 노은대감의 부인이 되었으니 처남 매부지간도 된다. 노은과 청죽은 그렇게 친하면서도 성격은 딴판이다. 청죽대감이 얌전한 샌님인데 반해 노은대감은 화통한 한량이다. 노은대감은 술을 좋아하고 풍류를 즐기고 특히나 여자를 후리는 데는 도가 텄다. 한평생 치마폭에 싸여 살아온 것도 모자라 오십이 넘은 지금까지도 그 버릇을 못 고치고 있다. 사실 노은이 여자를 .. 2024. 1. 9.
부자 되는 법 부자 되는 법 저녁나절, 오생원 집에 생전 발걸음을 않던 이초시가 찾아왔다. 오생원이 약간 비꼬는 투로 물섰다. “지체 높은 초시 어른께서 어인 일로 찾아오셨나?” 이초시가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못 올 데를 왔나.” 오생원과 이초시는 서당친구였지만 살아가는 길이 달랐다. 오생원은 일찌감치 장삿길로 들어서 차곡차곡 재산을 쌓아 알부자가 됐지만, 이초시는 과거에 매달리다 낙방을 거듭해 가세가 기울어진 판이다. “술 한잔하러 가세.” 이초시가 오생원 소매를 당겼다. 동구 밖 주막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이초시가 말문을 열었다. “내 동생, 자네도 알지?” “알고 말고. 천하의 한량이지.” “쥐뿔도 없는 게 지가 무슨 호걸이라고 허구한 날 저자거리 두목 노릇을 하더니만 논밭 다 팔아먹고 며칠 전에는 집까지 날렸.. 2024. 1. 9.
오생원의 사부님 오생원의 사부님 오생원은 요즘 도대체가 살맛이 안 난다. 입맛도 술맛도 없고, 치마를 벗기는 재미도 없다. 배는 동산만 하게 올랐고, 앉았다 일어나기도 힘이 들고, 마실 갔다 오는 데도 숨이 차고 다리가 아파 대문 기둥을 잡고 헥헥거리다가 마당으로 들어온다. 마흔도 안 된 오생원은 만석꾼이다. “강집사~ 곰 발바닥 요리가 맛있다더라.” 오생원이 입만 뻥긋하면 날쌘 강집사는 강원도 포수한테 달려가 곰발바닥을 구해오고, 팔도강산 맛있는 것은 빠짐없이 구해왔다. 그런데 요즘 어느 것 하나 맛있는 게 없다. 조선천지 이름난 명주 다 마셔도 쓰기만 하다. 오생원은 첩을 다섯이나 뒀다. “일목아~” 오생원은 애꾸눈 행랑아범을 최서방이라 부르지 않고 언제나 눈이 하나라고 일목(一目)이라 부른다. 통시에서 보던 일도 .. 2024. 1.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