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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반사/感動.野談.說話253

마패 아버지를 일찍 여읜 민국 어머니가 이초시와 재혼하면서 글공부에만 몰두하는데… 민국이 여섯살 때 아버지 박 서방이 이승을 하직했다. 민국은 장날이면 아버지를 따라 장터에 가서 깨엿이며 강정을 사먹던 일이 사무치도록 그리웠다. ​ “아부지 등에 업혀 외갓집에 가고, 목마 타고 원두막에도 갔었지.” ​ 민국이는 날마다 아버지 묘소에 가서 흐느꼈다. 동지섣달 추운 날엔 아버지 무덤을 덮어 주겠다며 이불을 들고 나서다가 어미와 부둥켜안고 눈물바다를 이루기도 했다. 민국 어미는 남편이 죽자 평소 하지 않던 농사일에 매달려 근근이 입에 풀칠할 정도로 살았다. 그러다가 어느 해 봄날, 못자리를 내야 할 그 바쁜 철에 몸이 불덩이가 되면서 덜컥 몸져누웠다. ​ 민국이네는 이듬해 보릿고개에 논을 팔았고, 야금야금 밭도 팔.. 2022. 7. 12.
홍매 죽마고우 이초시와 한진사… 붉은 매화 핀 날 사돈 맺어 ​ 이초시, 아들이 열병으로 세상 뜨자 청상과부 며느리 친정으로 보내는데… 이 초시와 한 진사는 죽마고우다. 어릴 적부터 같은 서당에 다니며 둘도 없는 단짝이 돼 말다툼 한번 없이 형제처럼 친하게 지냈다. 어른이 돼서도 두사람의 우정은 관포지교에 못지않았다. ​ 장가를 가서 이 초시는 아들 둘을 두고, 한 진사는 아들 하나 딸 셋을 두었다. 어느 날 이 초시는 하인을 보내 강 건너 사는 한 진사를 불렀다. 한 진사가 이 초시네 하인에게 물었다. ​ “붉은 매화가 피었더냐?” ​ 한 진사는 겨우내 잘 익은 감로주를 하인의 손에 들려 외나무다리를 건넜다. ​ 이 초시 별채 앞에 서 있는 고매(古梅) 나무에 홍매화 꽃망울이 톡톡 터지기 시작했다. 두사람은.. 2022. 7. 12.
갈처사 개울 옆 자갈밭에 어미 묘 쓰려는 소년 지나던 선비가 사연을 묻고 기막혀 ‘갈처사’ 집 찾아 고함을 지르는데… 선비 한사람이 시동 하나를 데리고 구름에 달 가듯이 길을 걷다가 고개 너머 개울가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젖살이 채 빠지지도 않은 열네댓 먹은 소년이 울면서 개울 옆 자갈밭을 삽으로 파고 있었다. 발걸음이 땅에 붙어버린 선비의 눈길이 닿은 곳은 소년 옆에 놓인 관이었다. 선비가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 더욱 서러운지 소년은 삽질을 멈추고 삽자루를 죽장처럼 잡고 꺼이꺼이 울어댔다. 한참 울던 소년이 소매로 눈물을 훔치고 다시 구덩이를 파내려갔다. 구덩이 아래 흥건히 물이 고였다. 소년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허리를 폈을 때 선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젊은이, 지금 무얼 하고 있소?” 소년은 목이 메어 .. 2022. 7. 6.
혁신(革腎) 최고급 가죽신 만드는 ‘노박’ 어느 날 은밀한 의뢰를 받는데 … 성은 노가요 이름은 박, 열여섯살 노박이 가죽공방에서 일한 지 십년이 됐다. 여섯살 때 가죽공방에 들어와 코를 흘리며 잔심부름을 하다가 오년만에 가죽을 만진 노박은 눈썰미가 있고 손재주도 남달랐다. 가죽공방에서는 가죽신발을 만들어 부잣집 아녀자나 고관대작에게 팔았는데, 가죽에 요철 문양을 넣는 값비싼 신발을 만드는 일은 최고 솜씨를 인정받은 노박의 차지다. 어느 날 공방에 한 부인이 찾아왔다. 대갓집 마님이나 여염집 부인하고는 무엇인가 좀 달랐다. 차림새부터 짧은 저고리 깃단이나, 치마끈을 아래로 내려 묶어 엉덩이 두쪽이 수밀도처럼 드러난 것이나, 코를 찌르는 박가분 냄새, 헤픈 웃음, 살랑대는 걸음걸이…. 신발을 쭉 훑어보더니 그녀가 꼭 .. 2022. 7.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