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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반사/感動.野談.說話253

금실 좋은 류 초시와 옥계댁 금실 좋은 류 초시와 옥계댁 혼인한 지 3년이 지나도록 태기가 없어 애가 타는데… 류 초시와 그의 부인 옥계댁은 뭇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금실 좋은 부부다. 류 초시는 천석꾼 부자에 신언서판 어디 하나 모자란 데가 없고 후덕한 인품까지 갖췄다. 부창부수라 양반 대가에서 시집와 남편을 하늘같이 받들고 시부모를 잘 모셔 효부로 칭송받은 옥계댁은 인물까지 빼어났다. ​ 그러나 천지신명께서는 모든 걸 주지 않고 하나를 빠뜨렸다. 시집온 지 3년이 지났건만 옥계댁에게 태기가 없는 것이었다. 조선 팔도강산 용하다는 의원을 다 찾아가 약을 지어와 달여 먹어도, 새벽마다 삼신할미에게 손이 닳도록 빌어도, 영험하다는 백일기도를 드려도 옥계댁 뱃속에는 아기가 설 줄 몰랐다. ​ 류 초시는 사흘 거리로 안방을 찾아 옥계댁을 .. 2022. 9. 5.
갈처사 개울 옆 자갈밭에 어미 묘 쓰려는 소년 지나던 선비가 사연을 묻고 기막혀 ‘갈처사’ 집 찾아 고함을 지르는데… 선비 한사람이 시동 하나를 데리고 구름에 달 가듯이 길을 걷다가 고개 너머 개울가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젖살이 채 빠지지도 않은 열네댓 먹은 소년이 울면서 개울 옆 자갈밭을 삽으로 파고 있었다. 발걸음이 땅에 붙어버린 선비의 눈길이 닿은 곳은 소년 옆에 놓인 관이었다. 선비가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 더욱 서러운지 소년은 삽질을 멈추고 삽자루를 죽장처럼 잡고 꺼이꺼이 울어댔다. 한참 울던 소년이 소매로 눈물을 훔치고 다시 구덩이를 파내려갔다. 구덩이 아래 흥건히 물이 고였다. 소년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허리를 폈을 때 선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젊은이, 지금 무얼 하고 있소?” 소년은 목이 메어 .. 2022. 8. 31.
혁신(革腎) 최고급 가죽신 만드는 ‘노박’ 어느 날 은밀한 의뢰를 받는데 … 성은 노가요 이름은 박, 열여섯살 노박이 가죽공방에서 일한 지 십년이 됐다. 여섯살 때 가죽공방에 들어와 코를 흘리며 잔심부름을 하다가 오년만에 가죽을 만진 노박은 눈썰미가 있고 손재주도 남달랐다. 가죽공방에서는 가죽신발을 만들어 부잣집 아녀자나 고관대작에게 팔았는데, 가죽에 요철 문양을 넣는 값비싼 신발을 만드는 일은 최고 솜씨를 인정받은 노박의 차지다. 어느 날 공방에 한 부인이 찾아왔다. 대갓집 마님이나 여염집 부인하고는 무엇인가 좀 달랐다. 차림새부터 짧은 저고리 깃단이나, 치마끈을 아래로 내려 묶어 엉덩이 두쪽이 수밀도처럼 드러난 것이나, 코를 찌르는 박가분 냄새, 헤픈 웃음, 살랑대는 걸음걸이…. 신발을 쭉 훑어보더니 그녀가 꼭 .. 2022. 8. 31.
가출 하룻밤 객방지기 된 남정네 둘 초면의 어색함 술로 풀어보는데… 동구 밖 주막에 허 진사가 들어섰다. 기운이 쑥 빠진 목소리로 평상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주모, 술 한잔 주시오.” 몇순배 자작 술을 기울이더니, “주모, 나 오늘 밤 여기서 유숙하겠소.” “아니, 제집을 코앞에 두고 웬 객잠이오?” “그렇게 됐소.” 한마디 던지고 객방으로 들어가니, 드넓은 객방에 단 한사람만이 구석에 벽을 등지고 기대앉아 달걀로 멍든 눈을 비비고 있었다. 남정네 둘이 초면에 한방 신세가 되면 서로 어색하기 마련인데 그걸 풀어주는 건 술밖에 없다. “역곡에 사는 우 생원이라 합니다.” “허 진사라 합니다.” 우 생원이 한병, 허 진사가 한병을 사며 몇차례 술병이 들락날락하자 두사람은 하나하나 허물을 벗기 시작했다. 나이가.. 2022. 8.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