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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반사474

못 믿을 건 여자? 못 믿을 건 여자? 한 초시는 또 과거에 낙방하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삼십리 밖 천석꾼 부자 조 참봉 댁 집사로 들어갔다. 쓰러져 가는 초가삼간에 신부 혼자 남겨 두기 뭣해서 늙은 이모님을 불러다 함께 지내도록 했다. 한 초시가 하는 일이 고되지는 않았다. 조 참봉의 서찰을 대필해 주고 장부를 만들어 소작농들을 관리하고 곳간의 재고를 기록하는 정도다. 한달에 집에 갈 수 있는 사흘을 빼면 나머지 날들은 조 참봉 댁 행랑채에서 잠을 잔다. 월말에 집에 갈 땐 구름을 타고 바람에 흘러가는 듯 하지만 아리따운 새 신부와 꿀 같은 사흘을 보내고 조 참봉 집으로 돌아올 땐 천근만근 발길이 무겁다. 조 참봉의 생일날 친척과 친구들이 모여들자 산해진미가 상다리가 휘어져라 상에 올랐다. 행랑채 호롱불 아래서 한 초시도.. 2023. 6. 7.
나루터 주막에서 생긴일 나루터 주막에서 생긴일 이화댁에 마음 있는 소장수 방 열쇠 전해주고는 술 퍼마셔 늦은밤 방으로 가다 열린 문 보고 회심의 미소 지으며 들어가는데… 석양이 떨어지며 강물은 새빨갛게 물들었다. 어둠살이 스멀스멀 내려앉는 나루터 주막은 길손들로 들끓고 부엌에서는 밥 뜸 드는 김이 허옇게 쏟아지고 마당가 가마솥엔 쇠고깃국이 설설 끓는다. 내일 채거리장을 보러 온 장돌뱅이들, 대처로 나가려는 길손들, 뱃길이 끊겨 발걸음을 멈춘 나그네들은 저녁상을 기다리며 끼리끼리 혹은 외따로 툇마루에 걸터앉거나 마당 한복판 평상에 앉거나 마당가 멍석에 퍼질러 막걸리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때 검은 장옷으로 얼굴을 가린 채 눈만 빠끔히 내민 여인이 사뿐사뿐 남정네 냄새 가득한 주막으로 들어서더니 장옷을 벗어 안방에 던져놓고 팔소매.. 2023. 6. 7.
영혼을 깨우는 벗을 찾아라. 법정 스님 영혼을 깨우는 벗을 찾아라. 내 주변에서 나쁜 친구를 가려내기 전에 나 자신이 과연 남에게 좋은 친구 역할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봐야 합니다. ​허물을 밖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그런 바탕이 준비되어 있는가 아닌가를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좋은 친구라는 것은 나를 속속들이 알아서 받아 주고 이해해 주는 그런 마음의 벗입니다. 또 나에게 그때그때 깨우침을 주는 사람, 그가 좋은 벗입니다. ​우리가 좋은 친구를 만나지 못하는 데는 몇 가지 허물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좋은 친구를 바로 가까이 두고도 먼 데서 찾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만나면서도 그 안에서 좋은 친구를 찾아야 되는데 먼 데서 찾는 것입니다. ​너무 일상적인 접촉이 심하다 보니까, 그 친구가.. 2023. 6. 7.
덕담 땀을 뻘뻘 흘리며 아궁이에 장작 넣으랴 주걱으로 가마솥의 조청 저으랴 바쁜 와중에도 주실댁의 머릿속은 선반 위의 엿가락 셈으로 가득 찼다. ​ ​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이다. ​ 그저께 팔다 남은 깨엿 서른세가락을 분명 선반 위에 얹어 뒀건만 엿기름 내러 한나절 집을 비운 사이 스물다섯가락 밖에 남지 않았으니 이건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 방에는 열한살 난 아들밖에 없고 그 아들은 앉은뱅이라서 손을 뻗쳐 봐야 겨우 문고리밖에 잡을 수 없는데 어떻게 엿가락이 축날 수 있단 말인가? ​ 추실댁은 박복했다. ​ 시집이라고 와 보니 초가삼간에 산비탈밭 몇마지기뿐인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다 신랑이란 게 골골거리더니 추실댁 뱃속에 씨만 뿌려두고 이듬해 덜컥 이승을 하직하고 말았다. ​ 장사를 치르고 이어서 유복.. 2023. 6.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