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다반사474

매형 호의호식하던 천석꾼 유 진사 어느날 탁발승과 맞닥뜨리는데… 유 진사가 점심 수저를 놓고 솟을대문 밖으로 나갔다. 뒷짐을 지고 발아래 펼쳐진 황금 들판을 내려다보니 빙긋이 입이 벌어졌다. 그때 지나가던 한 탁발승이 삿갓을 푹 눌러쓴 채 “쯧쯧쯧, 운세가 정점을 찍었구랴!” 탁발승은 유 진사에게 이끌려 사랑방에 앉았다. “여봐라, 여기 곡차를 올리렸다~.” 둘이 주거니 받거니 몇순배 청주를 돌린 뒤 유 진사가 물었다. “정점을 찍다니요? 이제는 내려갈 운세요?” 스님은 여전히 삿갓을 눌러쓴 채 “하강곡선을 그리는 게 아니라, 절벽에서 떨어지듯이 급전직하하겠소이다.” 유 진사가 너털웃음을 짓더니 “땡초가 못하는 말이 없네.” 문을 발로 차며 “여봐라, 하인들을 모두 모이도록 하라.” 그러자 탁발승이 삿갓을 올.. 2022. 6. 7.
그믐달 우 생원이 그린 조잡한 그믐달 모두가 조롱하고 비웃는 그림을 부자 영감이 비싼값에 사가는데… 지필묵 장수, 우 생원이 어느 날부터인가 화공(畵工)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저잣거리 화상(畵商)들이 몰려 있는 곳에 제 그림을 들고 나타난 우 생원은 웃음거리가 되었다. 모든 화상들이 외면하는데 어느 짓궂은 화상이 우 생원을 놀리며 그림이나 한번 보자고 두루마리 족자를 펼쳤다가 가게가 뒤집어지도록 폭소를 터뜨렸다. 감나무 가지에 걸린 그믐달 그림이다. “우 생원, 달을 그리려면 둥근 만월을 그리든가 새로 태어나는 초생달을 그려야지 기울어지는 그믐달을 그려 놓으면 누가 사가서 자기 집 벽에 걸겠는가. 쯧쯧쯧…” 그림도 조잡하기 짝이 없었다. “어르신, 전시나 좀 해주세요. 팔리면 어르신이 칠을 먹고 제게는 삼만 .. 2022. 5. 25.
산삼 어느날 산에서 약초를 찾던 중 재기가 산삼을 발견하는데… 앞뒷집에 사는 덕팔이와 재기는 둘도 없는 불알친구다. 그러나 두녀석의 노는 꼴은 영 딴판이다. 덕팔이는 우직하고 느릿느릿한 데 반해 재기는 영악스럽고 약삭빠르다. ​ 어느 날, 두녀석은 저잣거리로 놀러 나갔다. 그런데 재기가 똥이 마려워 길가 풀숲으로 들어간 사이 천천히 길을 걷던 덕팔이의 두눈이 왕방울만 해졌다. 길에 엽전이 점점이 떨어진 것이다. 어느 부자 첨지가 말을 타고 가면서 전대가 풀어진 것을 몰랐던 모양이다. 모두 열여섯냥이나 되었다. ​ 덕팔은 그대로 길가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때 풀숲에서 나온 재기가 “왜 그러고 있느냐?”고 물었다. ​ 덕팔이 왈 “돈을 흘린 사람이 틀림없이 되돌아올 테니 여기서 기다려야 해.” “얼마나 주웠는데?.. 2022. 5. 20.
한눈에 반하다. 단옷날 그네여왕 춘화 ​그녀에게 한눈에 반했다는 씨름장사와 혼례를 치르고 첫날밤 펑펑 우는데… “지화자~ 지화자 좋다. 녹음방창(綠陰方暢)에 새울음 좋고 지화자~.” ​ 기생 일곱이 뽑아내는 가락에 단오 분위기는 한껏 부풀어 올랐다. 가림막 아래 멍석을 깔고 사또와 육방관속, 고을 유지들은 술잔 돌리기에 여념이 없고 드넓은 아랑천 모래밭은 이골저골 열아홉마을에서 모인 남녀노소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천변의 회나무 그넷줄은 노랑저고리 분홍치마를 매달아 올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씨름판의 함성은 천지를 뒤흔들었다. ​ 기나긴 오월 햇살이 비스듬히 누울 즈음, 씨름판도 결판이 났고 그네도 여왕이 탄생했다. 오매골 노첨지의 셋째딸, 춘화는 올해도 그네 여왕이 되어 사또로부터 비단 세필을 받았다. 그런데 춘화의 .. 2022. 5.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