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반사/感動.野談.說話253 야반도주 류청이와 야반도주한 세록이 방세 위해 남한산성 향하는데 류 대감의 깊은 한숨에 문풍지가 떨렸다. 재작년 봄에 시집간 딸 류청이가 청상과부가 되어 친정으로 돌아와 초당에 틀어박혀 죽은 듯이 지내는 게 가슴 아파 류 대감은 애꿎은 안동소주만 목구멍 안으로 쏟아 넣고 있었다. 눈이 펄펄 내려 마당에 솜처럼 하얗게 내려앉았다. 열여덟살 집사 박세록이가 애들처럼 안마당에서 눈덩이를 굴리더니 날이 저물자 초당 앞에 몸통과 머리통을 올려두고 손을 털었다. 이튿날 아침, 세록이가 류 대감이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사랑방으로 들어가 말했다. “대감마님, 혹시 제가 어제 저녁에 만들어놓은 눈사람에 눈·코·입을 붙이셨습니까요?” 류 대감이 눈을 비비며 “아니”라고 답하자 “그렇다면 초당의 류청 아씨가 붙인 게 틀림없습니다” .. 2023. 1. 31. 호랑이의 보은 박 대인, 늦은밤 산길 헤매다 늑대떼가 그를 둘러싸는데… 천석꾼 부자 박 대인이 오십리나 떨어진 외삼촌 상가(喪家)에 문상을 갔다가 늦은 밤 집으로 향했다. 대한(大寒)이 코앞이었지만 날씨가 봄처럼 포근해 오십리를 걷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구름에 달 가듯 설렁설렁 까치고개를 오르는데 비를 몰아오는 흘레바람이 불더니 북쪽 하늘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고갯마루는 멀었는데 흩날리던 눈발이 금세 커졌다. 바람까지 불어 두루마기 위에 입은 누비덧옷 옷깃을 여몄다. 설상가상 박 대인이 지름길을 택한 것이 잘못이었다. 북풍한설이 박 대인을 가로막았다. ‘어어’ 하는 사이 눈이 무릎까지 쌓이며 좁은 길이 사라졌다. 길을 잃자 박 대인은 덜컥 겁이 났다. 어둠살마저 덮기 시작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 2023. 1. 31. 도둑질에도 도가 있다 도둑질에도 도가 있다 최참봉은 만석꾼 부자다. 논밭에서 추수한 곡식으로 곳간을 가득 채우는 것보다는 저잣거리의 많은 가게에서 집세를 받는 게 더 큰 소득원이다. 월말이 되어 최참봉이 뒷짐을 지고 장죽을 흔들며 저잣거리로 나가면 임차인들인 가게 주인들은 저마다 허리 굽혀 최참봉에게 인사하느라 여념이 없다. 이 가게 저 가게 세를 받아 전대에 넣은 최참봉은 마지막으로 주막집에 들렀다. 그 주막집도 최참봉 소유라 주모가 버선발로 뛰어나와 최참봉을 부축해서 모셔다 안방에 앉혔다. 푹푹 찌는 날씨라 주모는 물수건을 내오고 부채질을 하다가 부엌으로 가 냉콩국수 상을 들고 왔다. 최참봉은 냉콩국수를 두그릇이나 비우고 주모의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냉막걸리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술이 얼큰하게 오른 채 주막을 나와 집으로 .. 2023. 1. 30. 쌍과부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쌍과부 십여년 전 홀로된 시어머니와 삼년 전 청상과부된 며느리 열두칸 큰집에 주막 꾸리고 모녀처럼 정답게 지내는데… 가을이 깊어가면 구곡골은 온통 단풍으로 붉게 물든다. 계곡물도 떨어진 단풍잎을 안고 울긋불긋 물든 채 휘돌고 부딪치며 콸콸 쏟아져내린다. 새우젓장수가 바위에 지게를 기대놓고 곰방대를 빼내어 담배 한대를 맛나게 피우고는 좌우를 살피고 계곡으로 내려갔다. 거기서 바지를 훌렁 벗어던지더니 물가에 엉거주춤 앉아 얼음 같은 찬물로 사타구니를 씻었다. 산허리를 돌자 화전 밭뙈기들이 띄엄띄엄 나오고 열두어집이 저녁연기 모락모락 피우며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집들이라야 모두가 서너칸 너와집·억새집인데 한집은 열두칸 큰집에 돌담 울타리도 쳐졌다. 새우젓장수는 스스럼없이 열두칸 큰집으.. 2023. 1. 28. 이전 1 ··· 20 21 22 23 24 25 26 ··· 64 다음